Description
경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주는 책!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금 진정국면인가? 아니면 장기 불황의 시작 단계인가? 한국경제는 안전한가? 경제전문가들도 쉽사리 전망을 내놓기 힘든 심각한 위기 속에서 한국의 투자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외환위기를 겪어내며 한국경제가 건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부동산 가격과 급격하게 자산이 몰린 펀드,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환율로 인해 수출 의존형의 한국경제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그러나 금융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지금의 투자자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금융위기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준다고 믿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잡기 위해서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IMF 외환위기 때에는 당장의 문제 속에 파묻혀 큰 시장을 보지 못한 시기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문제의 답을 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금융위기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다.
전통 경제학자인 저자의 책에는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한 1907년의 금융역사를 통해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이 담겨있다. 당시 금융 붕괴에 대한 흥미진진한 사례 연구로 위기의 시기를 전망하고 대처하고자하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또한 독자들은 이상건의 해제로 그런 역사적 통찰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용한 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907년 금융위기 어떻게 진행되었나?
1907년의 금융공황은 샌프란시스코 지진 발생과 연란은행의 미국 금융어음 규제 이 두 가지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일어났다. 이때 F. 오거스터스 하인즈와 찰스 모스가 유나이티드 구리회사의 주식 매점을 시도함으로써 공황의 도화선에 불이 붙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니커보커 신탁회사의 총재인 찰스 바니가 하인즈 및 모스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고 알려지자 예금자 18,000여명이 돈을 찾으러 니커보커 신탁회사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뱅크런이 니커보커 신탁회사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은 아메리카 신탁회사를 비롯한 다른 금융기관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월스트리트가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이다. 급박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J. P. 모건은 월스트리트로 돌아와 자금 지원체계를 조직해 뱅크런이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조취를 취하기 시작했다.
1907년 공황이 초래한 가장 심각한 결과는 자금 부족과 유동성 부재였다. 이때에도 또 다시 J. P. 모건은 공황을 진정시키는 데 탁월한 역할을 했다. 모건은 더 많은 문제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에스스틸이 소규모 강철 제조회사를 사들이도록 했다. 운용자금 부족으로 거의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뉴욕 시와 뉴욕 증권거래소 문제 역시 J. P. 모건이 해결사 노릇을 했다. 이런 위기가 지나간 뒤 미 의회는 은행을 감독하고 금융 시스템의 미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당시 금융위기 VS 현재의 금융위기
1907년의 위기와 2008년의 경제 비상사태를 비교하면 둘 사이에 놀라운 정도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금융회사 간에 상호 긴밀한 연결성을 갖는다는 것은 곧 한 회사의 어려움이 다른 회사에까지 퍼진다는 의미다. 1907년의 위기와 2008년 위기에는 모두 심각한 신용문제와 유동성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1907년 때도, 2008년 때도 월스트리트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1907년에 신탁회사들이 허술한 규제 때문에 곤경에 처한 것처럼 2008년에도 서브프라임모기지가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반면 1907년의 위기는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되어 순식간에 유럽 금융기관으로 번졌으며, 2008년의 상황은 훨씬 더 세계적인 파급력을 지녔다. 또 1907년 금융 시스템보다 더욱 복잡해진 지금의 금융 시스템에서는 문제의 근원을 찾아 적절한 대응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보다 더 큰 문제는 1907년에는 J. P. 모건이 위기를 막고 예금자와 투자자에게 예금과 주식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데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월스트리트에 없다는 것이 당시와 지금의 차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