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으면 모두 과거로 만들 수 있다”
2013년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 작가의 신작!
농밀한 언어와 메마른 시선에 담긴 연민과 공감의 잔잔한 감동
“어떤 단편이 제일 좋은지 묻는다면 모든 단편에 충격과 깨달음이 있어 딱히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단편집입니다.”
― 일본 독자
일본 문학의 새로운 희망, 사쿠라기 시노를 알기 위한 첫걸음
‘안정된 필력, 뛰어난 기교’ 심사위원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제149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사쿠라기 시노의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이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은 올 요미우리 신인상, 시마세 연애문학상, 나오키상을 연이어 수상한 사쿠라기 시노가 2013년에 의욕적으로 발표한 소설집으로, 독자들로부터 나오키상 수상작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사쿠라기 시노를 이해하기 위한 첫 작품집으로 여겨진다.
“사람만으로는 소설이 완성되지 않고, 풍경만으로도 소설이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은 사쿠라기 시노가 나고 자란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 북쪽 끝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자연 환경은 혹독하고, 지역 경제는 쇠퇴해 황폐한 곳이 많다.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은 그런 쓸쓸한 풍경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부서진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폭설에 갇힌 목장, 쓰려져가는 강변의 집, 스산한 새벽녘 항구, 이른 아침 조용한 삿포로 길가, 호텔 꼭대기 층에서 바라본 삿포로 전경, 산간의 작은 온천 마을 등…… 일곱 편의 이야기 모두 홋카이도 특유의 황망한 풍경이 등장인물들의 삶과 겹쳐지며 전개된다. 이러한 사쿠라기 시노 특유의 작풍을 문학평론가 가와모토 사부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느 작품이든 홋카이도의 풍경과 풍토가 잘 그려져 있다. 땅과 장소를 소중히 여기는 작가인 만큼 사쿠라기 시노의 풍경 묘사는 훌륭하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동시에 시선은 그들을 둘러싼 풍경으로 향하게 만든다. 근경과 원경이 교묘하게 잘 녹아든다.”
농밀한 언어와 메마른 시선에 담긴 서늘한 위안과 조용한 감동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도 주로 어두운 그늘에 잠겨 있는, 주변부에서 밀려난 여성들이다. ‘신 관능파’라 불릴 정도로 ‘성(性)’을 유려하게 묘사하는 사쿠라기 시노는 농밀한 언어로 그들의 삶을 그린다. 하지만 결코 끈적이거나 질척대지 않고 메마른 시선으로 담담히 바라볼 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인 부인을 얻은 슈이치(「파도에 꽃피우다」), 쓰러져가는 강변 집에서 몸을 팔아 생을 연명하는 치즈루(「바다로」), 아르바이트생과의 부도덕한 관계에서 삶의 탈출구를 찾는 히토미(「프리즘」), 5년 동안의 스트립 댄서 생활을 은퇴하는 시오리(「피날레」), 28년 만에 유골로 돌아온 언니를 만난 미쓰에(「바람 여자」), 남편의 실패와 무기력에 함께 좌절하다가 옛 스승을 만나 다시 일어서려 하는 나나코 (「결 고운 하늘」), 전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고 아버지 친구를 만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가노다(「뿌리 없는 풀」).
선택하지 않았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어쩔 수 없는 삶, 그러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기대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살아간다. 거친 풍경 속 황폐한 사람들의 이야기임에도 축축한 느낌이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등장인물 저편 어딘가에서 서늘한 위안과 조용한 감동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으면 모두 과거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던 나나코의 독백(「결 고운 하늘」)은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살아 있는 한 그것을 모두 과거로 돌릴 수 있다. 죽는 순간 모든 것은 그저 과거로 남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