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와! 깜장 파티 하나 봐.” 엄마에게 말해주려고 방으로 달려갔어.
머리를 빗고 옷을 차려입으며 소녀는 누군가의 생일파티에 가는 줄 알고 마음이 들뜹니다. 그런데 ‘파티장’에는 사람들이 모두 까만 색 옷을 입고 있었지요. 검정색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다들 같은 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것이 눈곱만큼 마음에 들어 떼쓰지 않기로 합니다.
어른들은 분주합니다. 무언가를 준비하고, 손님과 함께 방에 드나들기만을 반복하는 어른들이 생경합니다. 소녀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고는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 할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퇴원하면 파티하자고 할머니와 약속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복도에 줄지어 선 꽃탑에서 떨어진 꽃잎을 모아 할머니에게 선물할 꽃밥을 만들고 밥 먹자는 엄마의 말에도 할머니를 기다립니다.
어린이의 눈에 비친 장례식의 모습과 작별의 이야기
은행나무는 장수, 정숙, 장엄과 희망을 상징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 책 『깜장파티』에도 소녀가 할머니와 작별하는 장면에서 노란 은행잎이 등장합니다. 장례식장에서는 아무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소녀는 이미 그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 같습니다. 소녀는 처음엔 애써 외면하고 부정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겠지요. 그러나 장례식을 치르면서, 어렴풋이나마 이별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용기내어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도 언젠가는 죽음을 통해 끝이 나겠지요. 하지만 그 유한함은 우리의 시간에 더 커다란 의미와 소중한 가치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지금의 이 시간을 더 충실하게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소녀는 이제는 훌쩍 자라있을 것 같습니다. 슬픔을 이겨내고, 다시 자신의 생활도 돌아와 삶을 잘 살아낼 만큼 마음의 힘이 세졌을 테니 말입니다.
파티는 파티다. 남은 이들의 남은 삶을 위한.
어린 시절,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엄마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애써 무시하는 척 했지만, 저는 지금껏 빨간 색으로 제 이름을 쓰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곧 헤어짐이고 슬픔이었습니다.
그 후로 많은 이별을 겪었습니다. 처음 길러본 금붕어도, 예뻐하던 강아지도, 좋아했던 마이클 잭슨도 떠나보냈고, 달콤한 식혜를 담가주시던 할머니와도, 온 세상이었던 어머니와도 헤어졌습니다. 경계선을 넘어간 이들을 더 이상 만질 수도, 껴안을 수도 없었고 미안하다는 말, 그립다는 말도 건넬 수 없었습니다. 죽음은 곧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었지요.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라는 약속
누군가 말했습니다. 장례식은 산 사람을 위한 의식이라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장례식은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가슴에 묻는 ‘공식적인’ 이별의 시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돌아가신 분을 잘 떠나보낸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으로 묻고, 남은 시간을 건강히 살아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삶의 마지막 페이지가 죽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가리고 덮어두려 합니다.
저처럼 헤어짐을 마주하기 두렵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때 이곳에서 만나 우리가 함께 했던 기적처럼, 언젠가는 또다시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조금은 덜 두려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은 시간, 건강히 살아내며 그때 나눌 즐거운 이야깃 거리를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김명 작가와 하상서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책
『깜장파티』는 청소년 소설을 써 온 김명 작가와 웹툰을 그려온 하상서 작가가 함께 선보이는 두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김명 작가의 시선이 하상서 작가의 그림을 따라 감정을 다독입니다.
『깜장파티』의 주인공 소녀는 삶과 죽음을 목격하고 헤어짐을 받아들이며 슬픔을 가슴에 묻습니다. 깊은 애도로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비로소 건져내고 삶을 건강히 살아갈 힘을 얻어 냅니다.
두 작가는 어린이들에게도 장례식은 가리고 감출 일이 아니라, 충분히 슬퍼하고 헤어질 수 있도록 함께 참여해야 할 이별의 의식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두 작가의 담담한 시선과 놀라운 상상력은 두고두고 가슴을 울릴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