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중회화’, ‘민화’의 뿌리와 발전과정을 파헤치고 현대적 계승을 추구하는 독보적인 연구 성과
◇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인류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킨 우리그림 ‘궁중회화’와 ‘민화’
조선시대 화단은 사대부들의 수묵화와 문인화 위주로 편향되어 있었지만 우리의 전통적이고 본질적인 분야는 채색화였다. ‘궁중회화’와 ‘민화’가 보여주는 다채롭고 색다른 예술세계는 지금 감상해도 놀랄 정도다.
이번에 출간된 <궁중회화>와 <민화>는 조선시대의 우리그림인 궁중회화와 민화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현대적 계승을 통해 작품활동을 해온 심규섭 화백의 독보적인 저작이다.
주로 우리그림의 교과서격인 ‘궁중회화’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은 그림인 ‘민화’ 속에 담겨있는 인류보편적인 미학과 조형방법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궁중회화와 민화의 뿌리와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이들 그림의 전통을 엄청난 속도와 방대한 사이버 공간이 지배하는 디지털의 시대에 어떻게 계승, 창작할 것인가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우리그림이 현대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 역사와 전통 속에 녹아있는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이 새로운 미술문화를 창조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밑거름이라는 점을 밝힌다. 이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제에 의해 끊어진 역사와 전통을 되살리는 작업을 시도한다.
◇ 인문학으로 밝혀낸 우리그림 ‘민화’
◇ 민화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은 그림이자 세계 최초의 대중그림이다
“민화는 책가도와 신선도를 통해 시작되어 대중화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창덕궁 재건벽화를 마지막으로 쇠퇴하고 기나긴 잠복기에 들어간다. 이 시기 백성들의 삶은 어려웠고 미래도 암담했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자했던 욕망은 넘쳐났고 민화의 세계는 화려했다.”
조선시대에는 민화를 속화(俗畵)라고 불렀다. 민화는 일본인 문예가의 허접하면서도 간교한 논리에서 나온 용어이고, 요즘 말로 다시 쓰면 대중그림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민화’는 실체는 있는데 그 뿌리가 모호한 우리 그림이다. 수 만점 이상의 그림이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에 남아있지만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방식으로 발전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조선 후기 영.정조시대 ‘자비대령화원’ 제도에 의해 촉발되어 고종황제 때까지 근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우리백성들의 애환과 희망, 풍류와 생활을 함께 해 온 민화는 근대를 거치는 동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왜곡되고 은폐되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 문화재, 역사서를 강탈해 간 것과 같이, 민화로 보이는 것은 시골집까지 뒤져 모조리 빼앗아 갔다. 그 이후 민화는 떠돌이 화공의 저급한 싸구려 미술로 치부되었고 미술계나 화단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생아 취급을 받았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뜻 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민족문화운동이 일어나면서 풍물, 판소리, 탈춤, 마당놀이, 생활한복, 전통무예 따위가 부활됐고, ‘민화’가 민족전통미술의 상징처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미술운동의 한 흐름으로 시작했던 ‘민화운동’은 더 이상 의식 있는 젊은 작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작품으로 창작되지 않았다.
민화가 다시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이다. 2002년 월드컵 신화와 민주정부의 등장, 남북관계의 발전 그리고 한류열풍은 국민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드높였다. 당연히 우리 전통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공중파 방송의 대하 사극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여기에 편승하여 허구가 가미된 젊은이들 취향의 퓨전사극 드라마가 상한가를 쳤다. 또한 영화 ‘서편제’에 이어 ‘왕의 남자’와 같은 사극영화의 흥행이 이어졌다. 민화가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소품을 통해 일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대한제국 시절, ‘자비대령화원’ 제도가 이유도 불분명한 채 없어지고 일제에 의해 말살된 지 근 100년 만에 민화는 대중매체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민화를 연구하는 젊은 미술이론가도 생겨나고 민화박물관이나 교육기관, 전문미술가모임, 공모전 따위도 생겨났다.
미술경매회사에서는 조선시대 연화병풍그림이 수십억 원에 낙찰되고 패션이나 각종 상품디자인에 차용되면서 민화는 한국의 전통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떠돌이 화공의 천박하고 싸구려 그림으로 인식되었던 민화는 이제 고급미술이 되어 부잣집 거실을 장식하고 있다.
우리가 민화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뿌리를 찾고 복원하기 위함이다. 민화는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문화유산이고 민족 공동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민화의 조형성과 내용은 현대미술에 적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치밀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민화는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왕과 양반과 백성이 하나로 연결되어 창조했던 민족공동체문화이다.
왜 ‘궁중회화’와 ‘민화’에 주목해야 하나?
◇ 궁중회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고 북한의 조선화와 통합하는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그림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대중화에 성공했던 사례를 가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의 핵심 사상인 유학적 가치가 총화 되어 있어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 부는 한류의 바람과 연계하여 막대한 문화 예술적 재부를 창출할 수 있다.”
우리가 궁중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은 일제에 의해 끊어진 역사와 전통을 되살리기 위함이다. 역사와 전통 속에 녹아있는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은 새로운 미술문화를 창조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밑거름이다.
지금은 엄청난 속도와 방대한 사이버 공간이 지배하는 디지털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우리그림은 현대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력이 충만한 이상세계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의 구현이라는 부귀영화와 불로장생이다. 엄밀히 말하면, 궁중회화와 민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성(聖)과 속(俗)의 표정을 가진 하나의 얼굴이다.
지금은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보다는 부귀와 불로장생을 담은 그림인 민화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민화의 부귀영화는 무제한의 소비를 통한 허영과 사치라는 금융자본주의와 맞아떨어지고, 불로장생은 신의 영역인 늙음과 질병,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본주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확대원근법에 따른 시공간의 확장, 화려한 색상과 간결한 형상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궁중회화는 남녀노소, 내외국인 할 것 없이 누구라도 척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그림이다. 어렵고 난해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궁중회화를 대표하는 [십장생도], [궁중모란도], [책가도], [궁중화조도] 따위는 화려한 색상과 정형화되고 간결한 형상, 시각적 중독을 일으키는 반복성과 대칭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대에서 궁중회화의 직관성은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이 가능케 하는 장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