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고리끼가 방랑생활 중 만나게 된 여러 유형의 부랑자들을 싸구려 합숙소를 무대로 그려낸, 러시아 그리보예도프 문학상 수상작! 고리끼는 러시아 중부에 위치한 니즈니 노브고라드에서 오랜 시간 관찰한 여러 유형의 부랑자들을 싸구려 합숙소를 무대로 하는 작품 <밤주막>에 옮겨 놓았다. 이들 중에는 한때 남작이었던 사람도 있고, 배우였던 사람도 있으며, 가죽공장을 경영하던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옛날의 화려했던 삶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지금 그들은 부랑자의 일원이 된 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급변하는 새로운 사회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밑바닥 삶으로 끌어내려진 이들 낙오자를 소재로 한 <밤주막>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공연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끼(1868~1936)는 불우한 삶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 살 때 선박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어머니와 외가인 까쉬린 가에서 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재혼함으로써 혼자 외갓집에 남게 된 고리끼는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잠시 동안이었으며, 염색공장을 하던 외할아버지가 파산으로 무너지게 되자 고리끼는 열 살 무렵부터 무일푼인 채로 홀로 세상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신발가게 점원과 선박에서 설거지 일을 하며 굶주림을 채워 가던 중 배에서 만난 주방장 덕분에 여러 가지 책을 접하게 된다. 열여섯 살 무렵 대학에 진학코자 결심하고 까잔으로 향했으나 학비가 만만치 않아 꿈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막노동으로 일하면서 대학생들의 비밀 모임에 참석하게 되며,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아지트인 제렌꼬프 빵집 기술자로 일하기도 하였다. 이 때 인민주의자들의 서클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사상적으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후 인민주의 혁명가들과 까잔 근교 농촌에서 혁명사업에 착수하지만 일이 실패로 끝나자 1888년 러시아 민중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러시아 순례를 떠나기로 한다. 이듬해 고향으로 돌아온 고리끼는 인민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석방 후 변호사 서기로 일을 시작했는데 이 무렵 당대의 유명한 문학가인 꼬롤렌꼬와 만나게 된다. 이듬해 다시 러시아 순례를 떠난 고리끼는 찌플리스에 머물며 여러 혁명가와 문학가와 교류하기도 했는데, 이를 계기로 1892년 찌플리스 지방신문 <까프까스>에 첫 작품 <마까르 추드라>를 발표하였다. 이는 젊은 집시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사랑이라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소개된 작품 <밤주막>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데다가, 공연도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러시아 정부는 그 동안 자신들의 걸림돌이 되었던 고리끼의 작품들에 대해 내용이 불건전하다며 공연금지 처분을 내리고 말았다. 신발가게 점원, 선박 근무, 막노동 일과 변호사 서기 등을 거쳐 러시아의 최고작가의 반열에 오르다. 정부는 1902년 고리끼가 러시아 학문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자 이를 무효화시켰다. 계속된 감시 하에서도 고리끼는 민중의 평화 시위를 유혈진압한 사건에 대해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써 냄으로써 또다시 한 달여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후 1906년 노동자를 위한 후원금을 모집하고 러시아 정부에 대한 외국의 차관을 막기 위해 미국으로 간 고리끼는 귀국이 어렵게 되자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정착하게 된다. 이 시기에 희곡 <적들>(1906)과 장편 <어머니>(1906)를 발표하였다. 고리끼는 자신의 이야기이자 동시대를 산 러시아 민중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 자서전적 3부작을 발표했는데, <어린 시절>(1913)과 <세상 속으로>(1916), <나의 대학>(1922) 등이 그것이다. 1924년 망명지에서 레닌의 사망소식을 접한 고리끼는 레닌을 진심으로 민중을 사랑한 훌륭한 지도자로 평가한 회상기를 쓰게 된다. 이후 이탈리아로 거처를 옮긴 고리끼는 자본가 3대와 노동자들 간의 갈등을 다룬 장편 <아르따모노프가의 사업>(1925)을 완성한데 이어, 마지막 장편 <끌림 쌈긴의 생애>(1927~1936)를 10년 넘게 공 들인 작품임에도 미완으로 남기고 1936년 6월 18일, 6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러시아 최고의 작가이기도 한 고리끼는 폐렴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타살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명확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격변의 시기에 태어나 작가와 혁명 투사로서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아낌없이 자신을 불태우고 간 고리끼는, 작품 속 주인공처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함으로써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