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서울대학교 ‘인문학 공동연구 총서’ 이번에는 욕망을 말하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은 2019년부터 매년 이 시대의 한 가지 화두를 주제로 선정하여 심포지엄을 개최해 왔다. 매년 10월이면 인문대학 내 여러 학과의 교수가 한 자리에 모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아직 여물지 않은 그 연구를 교수들은 겨울 동안 이렇게 저렇게 붙들고 있다가 다음 해 봄까지 하나의 완결된 원고로 완성한다. 그리고 그해 여름, 드디어 탐스러운 연구의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나온다. 깊은 숲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짙은 초록색 양장 커버를 두르고서 우리 곁을 찾아온 이번 인문학 공동연구 총서 『욕망에 대하여』는 바로 그 연구의 결실이다. 초록색 커버는 마치 생명의 숨처럼 멈추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이번 책에서는 다양한 대상으로 변주된 욕망을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이라는 렌즈로 살펴본다. 욕망은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책은 욕망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진정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욕망의 변주, 소유 혹은 사랑 1부에서는 소유욕과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변주된 욕망에 대하여 말한다. 1장 「마이카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고태우 교수가 한국인의 자동차 소유 욕망을 다룬다. 한국은 “미군이 남긴 지프를 두드려 자동차를 만들다가, 이제 연간 300만 대 이상을 생산하는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다. 우리 사회를 이 지점으로 빠르게 옮겨 놓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마이카’에 대한 욕망이다. 그렇다면 마이카에 대한 우리의 담론은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결론으로 끝이 난 걸까? 1994년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가 사치품이냐 필수품이냐’라는 물음에 전체 14.8%가 ‘사치품’, 75.8%는 ‘생활필수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끝난 것 같았던 ‘자동차가 사치품이냐 생활필수품이냐’의 질문은 기후변화 등 생태 위기를 직면한 지금, 탈탄소 체제로의 전환에서 새로운 쟁점이 되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고태우 교수는 마이카로 향하는 여정 앞에는 파국의 길과 지속 가능한 공존의 길로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그 방향키는 자동차에 대한 집단적 욕망을 어떻게 대체하느냐에 달렸다. 고태우 교수의 연구는 마이카에 대한 욕망을 두고 불평등의 문제와 과시적 소비 현상, 기후변화까지 논하면서 인문학 담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2장 「프쉬케와 쿠피도의 사랑 이야기」에서는 안재원 교수가 프쉬케의 과감하고도 위험천만한 욕망에 대해 들려준다. 쿠피도가 쏜 화살에 맞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화살에 자기 엄지를 찔러서 사랑에 빠진 프쉬케의 이야기는 왠지 현실 세계에 대입해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저자는 프쉬케의 이야기에서 ‘욕망 밖에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발견한다. 강렬한 호기심으로 욕망을 뛰어넘어야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욕망을 뛰어넘은 곳에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욕망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욕망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3장 「불가능한 기원」에서 김정하 교수는 친족의 기원을 찾는 ‘입양 서사’로 욕망에 대해 말한다. 미국에 입양된 디앤 볼셰이 리엠은 영화감독이 되어 친부모를 찾아 나선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감독은 친부모를 찾고 자기 안의 상실을 채우려고 하지만 친어머니를 만난다고 해도 “상실이라는 이름의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이 과정에서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연결하고, 상실이라는 욕망을 좇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로 이어진다. 욕망을 추구하는 일은 언뜻 끊임없는 반복의 굴레로 인간을 지치게 하는 일일 것 같지만, 그 과정에 어떤 의미가 있음을 이 글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중간이라는 요동이 서사적 진실, 나아가 서사라는 삶의 진실일지 모른다.”(125쪽) 4장 「자유롭지 못한 존재의 욕망」에서는 정길수 교수가 한국의 고전소설에 나타난 청춘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욕망의 문제를 다룬다. 「운영전」의 궁녀 운영, 「춘향전」의 기생 춘향, 「포의교집」의 행랑 새댁 초옥은 모두 신분 등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다. 작품 안에서 이들의 사랑은 처음에는 오해로 비롯된 해프닝, 또는 허영심의 발로로 보여진다. 그러나 사랑의 욕망이 지닌 순수함과 진실함은 자유와 평등의 문제로 범위를 넓히면서 독자로 하여금 체제 너머를 상상하게 한다고 이 글은 말하고 있다. 욕망이 남긴 삶의 여적 2부에서는 욕망이 남긴 것들을 돌아본다. 5장 「삼세기영지가의 영예」는 역모 사건에 친형과 장인이 억울하게 연루되면서 60년 동안 벼슬 없는 야인으로 살아야 했던 강세황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강세황은 평생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어 우울증과 좌절감으로 고통받았지만,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욕망을 져버리지 않았고, 「표옹자지」를 써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자신의 비범함을 알리고자 하였다. 무명의 재야 문인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지만, 그는 끝내 벼슬을 하게 되고 초고속 승진하여 일종의 명예의 전당인 기로소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게 됐다. 그의 호는 노죽(露竹), ‘이슬을 머금은 대나무’라는 의미다. 장진성 교수는 “차가운 공기가 사방을 뒤덮은 새벽, 이슬이 대나무에 맺혀도 대나무는 결코 휘지 않는다. 절개와 지조의 상징인 대나무처럼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도 강세황은 그 험난한 세월을 묵묵히 견뎠다.”(190쪽)라고 말한다. 욕망은 어쩌면 뜨겁고 들끓는 성질의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푸른 빛의 대나무처럼 고고하게 우리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강세황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듯하다. 6장 「소설 『요재지이』에 투영된 여우와 귀신의 심상한 욕망」에서는 여우-귀신 서사를 통해 한층 다채로운 인간 욕망의 실제를 다룬다. 김월회 교수는 인간의 욕망과 비교할 때 소설 속 여우와 귀신의 욕망이 권력 지향적이지 않다는 점, 소시민적 욕망에 만족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이 아닌 이들 주인공은 세속적 부귀영화의 추구를 비웃고 혐오하기도 하며,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남의 원한을 사서는 안 된다는 오묘한 이치를 깨닫기도 한다. 현실 속 우리가 특별히 욕망하지 않는 욕망의 대상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여우-귀신 서사는 제공하고 있다. 7장 「16세기 일본 무사의 고명이라는 욕망」에서 박수철 교수는 16세기 일본 사회의 지배층이라 할 무사에게서 볼 수 있었던 ‘고명(高名)’이라는 명예욕을 다룬다. 고명은 전쟁터에 나가 이름을 떨치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당시 일본인에게 고명은 단순히 명예라는 무형의 추상적 가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귀라는 실질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 글은 고명이라는 욕망을 통해 당시 조선과 달랐던 일본 사회를 설명하고 있다. 8장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 속 욕망의 궤적」에서 임호준 교수는 스페인 영화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작품으로 욕망을 다룬다. 부뉴엘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욕망이다. 부뉴엘은 서구 문명이 욕망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신경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점을 그는 영화에서 일그러진 형태로 표출되는 도착적인 욕망으로 표현했다. 영화에서는 욕망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연출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주인공이 욕망하는 여자 배역을 두 명의 여배우가 연기하게 한 것이다. 흔히 우리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 어떤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서로 다르게 생긴 두 명의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원한다는 것은 그의 욕망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9장 「스탈린 시대 소련 공산당원의 욕망」에서 노경덕 교수는 소련 역사 연구의 주요 패러다임이 바라보는 공산당원의 욕망 문제를 다룬다. 전체주의, 수정주의, 푸코주의, 신전통주의가 공산당원의 욕망을 서로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묘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