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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

천수경

4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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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나와 우는 우는

Books ・ 2025

우의 휠체어는 이 연애를 초고난이도로 만들었다. 라는 명제는 틀렸다. 휠체어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휠체어를 제대로 받아주지 못한 이 사회의 무능 때문에 두 사람의 연애가 어려웠다. 한국 사회의 수억 가지 무능을 말하다 보면 제도의 개선 다음으로 의식의 개선을, 그건 교육의 개선인데 교육이란 뭘까 하다 보면 또 다시 제도를 말해야만 한다. 이 책은 제도를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도를 말한다. 이 젊은 커플이 교환학생을 포기하게끔 만든 영어 학원의 포기. 영어 학원의 포기를 만든 지하철 이동의 포기. 야망보다 눈치를 길렀다는 저자의 말이 지금도 아프다. 눈치를 길러야 하는 건 비장애인 중심으로 휘어진 사회 때문인데. 애꿎은 이들이 눈치를 자꾸만 더 기르는 것 같다. 이 이야기 속 커플이 낯선 이들에게 사과보다는 감사를 더 많이 전했길 바랐다. 미안하다는 말보단 감사하다는 말이 더 산뜻하고 덜 피로하니까. 이미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부디 그랬길, 영어 학원도 이 젊은 커플의 눈치를 좀 봤길, 지하철에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한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당신들이 또 지하철 몇 개를 보내고 운 좋게 탈 수 있는 지하철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지만 저희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면서 사과했길 바랐다.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지만. 그런 사과가 필요 없는 세상으로 향한 길목엔 그런 사과가 있을 것이라서 나는 이 글을 지지한다. 가장 미시적인 마음의 단위에서부터 동요해야만 거시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연애가 이렇게 어려워야 하나, 아무것도 없는 원시인들도 연애는 하지 않았었나 (<머티리얼리스트>의 오프닝을 생각하며) 이 이야기에 동요했다. 이혼 과정을 그려낸 <결혼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 사랑이라는 걸 하고 싶어지듯, 연애의 어려움을 회고한 이 수필집은 이상하게도 사랑이 왜 재미있는지 상기시켜준다. 사랑할수록 내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닐 것 같은데. 그 죽음이 더 가까이 존재하는 이의 사랑을 읽으니 내가 하는 사랑도 증폭되어서 만져지는 것만 같았다. 사람 몸 안에서 심장이 내는 기척을 묘사한 부분은 내가 아는 모든 심장에 가까워지도록 만든다. 연애가 어떤 모양새여야 하는지 보고 배울 길이 희박한 원인으로 진부함에 절여진 미디어를 탓하는 편이다. 초중고 공교육에 연애라는 과목을 넣지 않을 거라면 이런 이야기라도 널리 퍼져야 한다. 다양한 연애의 모습을 우린 알아야 한다. 젊은 연애는 다 애달픈데 유난히 한국 젊은이들의 연애가 그렇게 느껴지는 건 이 사회의 다종다양한 가스라이팅이 내게도 작용했던 적 있어서다. 그 시절을 초과해서 자라난 후에 보면 많은 것이 달랐을 수도 있었음을, 그 여부가 소량의 용기에 달려 있었음을 생각하게 되고. 이어지는 자책이나 원망이 전부 애통하다.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화자가 장애인의 연애를 썼고, 장애인 우가 배경에 놓이는 것이 타자화라는 비난에 동의하지 않는다. 연애는 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장애인 비당사자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두 사람의 한 시절, 혹은 장애인의 애인으로 살아간 누군가의 당사자성 그 자체다. 굳이 비당사자라고 불러야겠다면 나는 당사자 곁에서 살아가는 비당사자들의 삶이 더욱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비당사자라서 가능한 에너지로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물꼬를 틀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우가 이 이야기를 적극 지지한 점을 나는 믿는다. 우를 위해 우에 대한 말을 최소화한 작가의 선택도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결코 우를 주변인으로 방치하는 선택이 아니다. 우리가 우에 관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이 증언되었다. 이걸 읽고 우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감이 안 왔다면 그 사람의 유머 감각을 의심해볼 만하다. 나는 끝말잇기로 ‘슭이로운 생활’이나 ‘륨어티스 관절염’을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없다. 장담하는데 우는 개웃긴 사람이다. 왜 그 사람과 함께했는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는지 곳곳에서 납득했고.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이유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모두가 사랑에 대한 기준을 바로 이런 사랑에 뒀으면 좋겠다. 많이 웃고 서로 구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많이 하는 이런 사랑. 이 정도에 덜 미치는 사랑은 굳이 시작 안 했으면 좋겠다. 띠동갑 사촌 동생한테 이 책을 사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