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서문
CHAPTER 1 높은 기대
CHAPTER 2 수습 리더
CHAPTER 3 신노동당
CHAPTER 4 허니문
CHAPTER 5 다이애나 왕세자비
CHAPTER 6 북아일랜드 평화 협상
CHAPTER 7 산문으로 통치하다
CHAPTER 8 코소보
CHAPTER 9 보수주의의 힘
CHAPTER 10 위기관리
CHAPTER 11 신노동당에 대한 통치 위임
CHAPTER 12 9·11 : ‘어깨를 나란히 하고’
CHAPTER 13 이라크: 전쟁 카운트다운
CHAPTER 14 결의안
CHAPTER 15 이라크 : 전후 처리
CHAPTER 16 국내 개혁
CHAPTER 17 2005년 :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CHAPTER 18 승리와 비극
CHAPTER 19 굳세게 견디다
CHAPTER 20 종반전
CHAPTER 21 떠나다
CHAPTER 22 후기
#감사의 말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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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의 여정
토니 블레어
1051p

영국 노동당 출신 ‘20세기 최연소 총리’ 토니 블레어의 정치 이야기. 토니 블레어는 1997년 43세로 영국 총리에 취임해 2007년 퇴임까지 10년간 재임했던 정치 지도자다. 1997년 총선에서 야당 노동당이 18년 만에 집권 보수당에 압승함으로써 21세기 영국의 최연소 총리가 됐고, 사회정의와 시장경제를 결합시킨 제3의 길을 표방해 영국의 국력을 강화시켰다. 이제 토니 블레어가 영국 총리에서 물러난 때로부터 7년이 흘렀다. 총리 퇴임 시 친기업적 정책 시행의 부작용으로 인한 빈부 격차 심화, 이라크전쟁 참전 결정 등으로 민심을 잃은 그는 한때 80퍼센트에 육박했던 압도적 지지율이 상당히 하락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현재 전 세계 정치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블레어리즘(Blairism)이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블레어가 총리 재임기 및 그 전후의 이야기를 직접 기술한 회고록으로, 그간 자신이 내려왔던 수많은 정치적 의사 결정의 과정과 결과를 성찰한다. 블레어의 정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어떻게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지지한 일 등 국제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었던 사안들도 정면으로 다뤄 “역사상 가장 솔직한 정치 회고록”이라는 평을 받았다.
Author/Translator
Table of Contents
Description
18년 장기집권의 보수당을 압승으로 꺾고 총선 3연승의 신화를 이룩한
영국 노동당 출신 ‘20세기 최연소 총리’ 토니 블레어의 정치 이야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에드 밀리반드 영국 노동당 대표, 헬레 토르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 ‘제3의 길’로 대표되는 토니 블레어 정치철학의 계승자들이다. 이 계승 대열에 2014년 2월 이탈리아 총리에 오른 마테오 렌치와 이어 3월 프랑스 총리에 임명된 마누엘 발스가 합류했다. 이에 전 세계 언론들은 “블레어는 죽지 않았다”는 골자의 기사를 게재했다. 토니 블레어는 1997년 43세로 영국 총리에 취임해 2007년 퇴임까지 10년간 재임했던 정치 지도자다. 1997년 총선에서 야당 노동당이 18년 만에 집권 보수당에 압승함으로써 21세기 영국의 최연소 총리가 됐고, 사회정의와 시장경제를 결합시킨 제3의 길을 표방해 영국의 국력을 강화시켰다. 우리에게는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노무현 정부의 ‘경제와 복지의 동반 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 영향을 준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제 토니 블레어가 영국 총리에서 물러난 때로부터 7년이 흘렀다. 총리 퇴임 시 친기업적 정책 시행의 부작용으로 인한 빈부 격차 심화, 이라크전쟁 참전 결정 등으로 민심을 잃은 그는 한때 80퍼센트에 육박했던 압도적 지지율이 상당히 하락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현재 전 세계 정치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블레어리즘(Blairism)이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토니 블레어의 여정(A Journey)》은 블레어가 총리 재임기 및 그 전후의 이야기를 직접 기술한 회고록으로, 그간 자신이 내려왔던 수많은 정치적 의사 결정의 과정과 결과를 성찰한다. 블레어의 정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어떻게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지지한 일 등 국제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었던 사안들도 정면으로 다뤄 “역사상 가장 솔직한 정치 회고록(옵서버)”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순한 회고록으로만 규정지을 수는 없다. 《토니 블레어의 여정》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한 국가의 리더가 겪는 인간적인 고뇌를 고찰한 한 편의 논문이자, 영국에서 만년 야당이었던 노동당을 총선 3연승으로 이끌고 창조경제 모델을 세계 최초로 제시한 정치 지도자가 쓴 정치전략 연구서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코소보 사태, 이라크전쟁 등에 직접 관여했던 정치인의 입을 통해 생생한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서이기도 하다.
토니 블레어만큼 영국의 행보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 총리는 없었으며, 그의 업적과 유산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그동안 토니 블레어의 면모와 성과를 조명한 저술들이 많았지만, 이 책은 토니 블레어가 자신의 목소리로 삶과 정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책은 과거를 통해 지금도 진행 중인 사안들을 조명하는 것뿐 아니라 미래를 전망하는 데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9/11 테러 이후의 국제 관계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의료, 교육, 복지, 치안 분야의 주요 개혁 등에 대해 재임 당시의 시각을 비롯해 현재의 세계관도 함께 제시했다. 〈서문〉 중에서
화려한 정치 업적과 함께 이라크 침공의 과오까지
고스란히 드러낸 역사상 가장 솔직한 정치 회고록
토니 블레어가 3년간 공들여 쓴 이 회고록은 460만 파운드(약 85억 원)라는 높은 선인세에 판권이 팔렸으며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화제작이다. 이 책의 내용은 시기별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총리 취임 이전의 정치 성장기이다. 그는 명문 사립학교인 페테스칼리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옥스퍼드에서 만난 기독교사회주의자이자 호주 성공회 목사인 피터 톰슨에게서 큰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와 실용주의에 열정을 갖기 시작했고, 자신의 출신 계층과는 거리가 먼 노동당에 입당했다. 대학 졸업 후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좌익운동가 집안의 셰리 부스와 결혼했고, 골수 노동당원인 장인 토니 부스의 격려를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블레어는 1983년 영국 북동부의 세지필드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 여정을 시작한다. 1983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크게 패했기에 그의 당선은 돋보였다. 하원의원으로 두각을 나타낸 블레어는 1994년 41세로 영국 노동당 역사상 최연소 당수가 되었다. 이후 집권을 목표로 좌파 정당의 근간 이념인 ‘당헌 제4조 국유화 조항’을 포기하고 분배와 성장 모두를 추구하는 ‘신노동당’ 정책을 밀어붙였다.
두 번째는 총리 재임 시절의 국내외 정치 활동에 관한 이야기다. 과감한 개혁 정책으로 중산층의 표심까지 끌어모은 블레어는,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해 영국 총리가 됐다. 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도 승리해 노동당 최초의 3연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는 “경제 발전 없이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무력하다”고 주장하며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유럽의 중도좌파 정치가들이 잇따라 제3의 길을 실제적인 정치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블레어리즘’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블레어는 재임기 동안 북아일랜드 분쟁 종식, 지속적인 경제성장(실업률 2.3퍼센트 감소, 1인당 GDP 1만 4751유로 증가), 공공서비스 개혁 등을 일궜다. 특히 국가의료서비스(NHS)와 관련, 보건 예산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모든 지역 의원에서 이틀 안에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NHS의 최대 문제였던 긴 대기 시간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복지 강화를 통한 ‘균등 분배’보다 교육 개혁을 통한 ‘기회 균등’을 앞세운 것도 블레어 정부의 특징이다.
내정 개혁에 성공한 블레어는 국외 정치에도 눈을 돌렸다. 특히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추측에 근거,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도와 영국군을 이라크전쟁에 대거 파병한 결정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일로 그는 ‘부시의 하수인’이라는 조롱과 “토니 블레어의 10년은 이라크 파병으로 빛이 바랬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전쟁 참전에 대해 후회가 없느냐?”는 질문에 시달린다면서 사담 후세인이 유엔의 무기사찰을 집요하게 방해했고,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식량과 의약품을 수입하는 대신 무기를 구매하는 등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시켰다고 강조한다. 이라크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었으므로 후세인을 제거한 전쟁은 정당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블레어는 이라크에서의 유혈 사태가 장기간 지속될 줄 몰랐으며, 전쟁으로 사망한 군인과 민간인들을 생각하며 좌절했다고 고백한다.
마지막은 총리 퇴임 이후 세계적 리더로서의 행보를 다루고 있다. 퇴임 후 그는 유엔,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를 대표해 중동특사로 활동했다. 또한 두 개의 주요 자선재단을 설립했는데, ‘토니 블레어 페이스 재단(Tony Blair Faith Foundation)’은 종교적 극단주의를 방지하고 이에 대처하는 것을, ‘아프리카 거버넌스 이니셔티브(Africa Governance Initiative)’는 아프리카 정부의 개혁을 도와 빈곤을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지도자들에 대한 허심탄회한 평가와
정치인 및 사회지도층을 위한 제언이 돋보이는 책
이 책에서 토니 블레어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부터 테러와의 전쟁까지 최근의 역사적 사건에서 자신이 담당한 역할을 처음으로 밝힌다. 더불어 노동당 인사들과의 관계 그리고 넬슨 만델라, 빌 클린턴, 블라디미르 푸틴, 조지 W. 부시 등 세계 지도자들에 대한 평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커뮤니케이션에 대단히 뛰어나며 자신과 정치적으로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한다.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연히 대통령이 된 바보’라는 세간의 악질적 평과와는 다르게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