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하비상 수상 작가의 신작 그래픽노블!
익숙해지지 않는 공포, 남북 긴장
한국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남북은 여전히 휴전 상태에 있고, 내일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냉전이 끝난 지도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한반도를 가운데 두고 미국과 일본, 러시아와 중국으로 편이 갈린 대립은 다양한 형태로 심각해지고 있다. 온 국민이 국가 지도자 개인의 성격과 이념에 따라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살아간다.
전 세계 200개 국가 중에서 아직도 분단된 채 남아 있는 나라는 북한과 남한뿐이다. 게다가 38선이라고 부르는 그 분단선은 우리가 그은 것도 아니다. 냉전도 끝났고, 1969년 UN에서 핵확산방지조약(NPT)도 체결됐지만,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핵무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런 뉴스를 접할 때 몹시 불안해하다가도 마치 이 모든 것이 먼 나라 이야기라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고. 또 새로운 남북 갈등이 불거지면 혹시 곧 전쟁이 나지 않을까 해서 또다시 불안에 떨기를 반복한다. 상대 체제가 적대적으로 반응할수록 대립은 더욱 격렬해져서, 어렵게 얻어낸 9·19 합의를 무효화하고, 상대에게 살포하는 전단의 양을 늘리고, 또다시 상대를 향해 선전용 확성기를 틀고,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전개한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북한 가까운 강화도에서 사는 작가. 서해에서 남북 갈등이 생길 때마다 불안해 어쩔 줄 모른다. 연평도 포격전도 그렇고, 북한의 서해 포 사격도 그렇고, 갈등이 현실화할 때마다 무서워서 쩔쩔매던 작가는 공산당을 뿔난 도깨비로 알았던 어린 시절의 이런저런 추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북한에서 살포한 삐라(전단)를 주워 오면 상을 받고,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국군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쓰고, 간첩을 보면 신고하라는 지시를 따르려고 애쓰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과연 공산당은 무엇인지, 김일성, 김정일은 어떤 존재이며, 북한 주민은 어떤 사람들인지.
실제로 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전쟁에 찬성한 적도 없고, 그들의 침략 의사 결정에 간여한 적도 없고, 북한 병사들과 싸우거나 북한 주민과 다툰 적도 없는데, 모든 끔찍한 갈등의 역사에 어떤 원인도 제공한 적이 없는데, 왜 내가 지금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할까.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현재 조선노동당 총비서 직을 맡고 있는 김정은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지금의 그는 왜 그런 지도자가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매우 진지한 탐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탐색 과정은 작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역사적이고 개인사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김정은은 누구인가
작가는 이 책을 만들기 전, 엄격하게 통제돼 쉽게 구할 수 없는 김정은 개인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다양한 정보원을 취재한다. 그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를 알려면, 그의 탄생 배경부터 성장과 교육 과정, 취향과 취미, 교우 관계, 성격적 특성과 사고 성향 등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했다. 그렇게 작가는 언론인, 김정남의 외국인 친구, 탈북 여성, 그리고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만나 김정은의 삶에서 중요했던 국면에 관한 진술을 듣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 김정일과의 관계, 유학 시절 함께 살았던 이모 고영숙과 이모부 리강 이야기, 김정은의 형 김정철, 동생 김여정 등과의 사연을 소개한다. 책의 제목이 ‘내 친구 김정은’인 것은 유학시절 김정은의 ‘절친’이었던 JM이라는 외국인이 그를 그렇게 불렀던 데서 비롯한다. 하지만 이 모든 진술이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나 나열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삶, 그리고 내면적 성찰이 함께 엮이고, 디테일이 매우 강한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강렬한 재미와 감동을 자아낸다. 예를 들어 김정은의 유학 시절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유학 시절 이야기와 교차하면서 서사의 문학적 향기를 강렬히 풍기기도 한다.
김정은 서사
줄거리에는 김정은의 탄생부터 외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그가 권력을 잡게 된 과정과 김정일이 사망하고 일인자가 된 과정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고모부 장성택 같은 친인척을 숙청하고,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하는 과정도 드라마틱하게 이어진다. 특히 저자는 여기서 유학 시절 김정남의 친구였던 프랑스인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다. 독자는 그의 진술에서 북한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인지, 감시와 처벌이 얼마나 일상화돼 있는지, 일인 독재 체제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한국에서 살면서도 늘 두려움에 떠는 그들을 보면서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 두려움은 작가가 탈북자 여성을 인터뷰할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 여성은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의 평가와 반응을 솔직히 전하면서 기득권 보수파들이 반감을 표하는 김정은에 대한 주민의 기대가 크다는 사실도 고백한다. 고단한 삶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북한 주민의 삶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평산 마을에 내려가 문재인 대통령을 인터뷰한다. 김정은을 직접 만났던 이야기, 방북 당시의 일화들이 독자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남북이 평화로 나아갈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문 전 대통령의 아쉬움도 생생히 전해진다.
전쟁의 비극, ‘페피노’라는 한국인
마지막으로 작가는 전에 콜롬비아에 갔을 때 만났던 ‘페피노’라는 한국인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 때 굶어 죽지 않으려고 먹을 것을 찾아 연합군 부대 쓰레기를 뒤지던 아이를 콜롬비아 병사가 어렵사리 자기 나라로 데려갔지만,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던 아이는 돈을 많이 벌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노인이 돼버렸다. 이국에서 너무 오래 살아 우리말도 잊어버린 그는 어느 기업의 후원 덕분에 46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너무 오래 떠나 있던 고향에서도 그를 반갑게 맞아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노인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조국을 떠나 타국의 빈곤한 삶으로 돌아간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작가는 남북을 갈라놓은 철책을 바라보며 육성으로 말한다.
“갯벌에 물 빠지면 걸어서 고작 30분 거리.
고향 땅이 코앞인데 야속한 철책선이
부모 형제자매를 갈라놓았다.
철책선 근처에 여러 무덤이 눈에 띄었다.
엄마, 아부지, 여보, 아들, 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다 별이 된
이산가족의 무덤이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북녘과 남녘
언제 어느 순간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저기 시베리아 너머 오던 봄에 샘이 났는가
살을 에는 찬바람이 온몸으로 봄을 막는다.
김정은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고
남측은 북한의 도발에 몇십 배로 응징하겠단다.
미움은 더 큰 미움을 낳고
혐오는 더 큰 혐오를 낳고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을 뿐
일백 년도 못 사는 인생
사랑만 해도, 아름다움만 봐도 아쉬운 인생.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듯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다. 우리가 만일 1945년 해방 이후의
한반도로 다시 돌아가서 신탁 통치에 찬성했다면 어땠을까?
신탁 통치 기간이 5년이니 한국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한국과 북한으로 분단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위협에 놓여 있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내일의 역사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