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예술인가

아서 단토 · 人文学
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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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자이자 평론가인 아서 단토의 유작. 무엇이 예술작품이 되는지에 대한 근원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이 책은 예술이란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기존의 해석에 도전하며, 하나의 보편적 의미를 빚어낼 수 있는 예술의 특질들을 밝힌다. 이에 모든 장르와 시대의 철학과 예술을 탐구하고,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해 일련의 혁신적 발견들로 이루어진 예술의 발전사를 알기 쉽게 풀어 나간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을 비롯한 철학자들과, 미켈란젤로, 푸생에서부터 뒤샹, 워홀에 이르는 예술가들의 기여를 두루 고찰한 광범위한 탐구이다.

著者/訳者

目次

들어가는 말 1장 | 깨어 있는 꿈 2장 | 복원과 의미 3장 | 철학과 예술에서의 몸 4장 | 경쟁의 끝 ─ 그림과 사진의 파라고네 5장 | 칸트와 예술작품 6장 | 미학의 미래 참고문헌 감사의 말 추천의 말 | 뒤샹과 워홀 이후의 예술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단토 미학의 종착지― 현대 예술의 흐름과 함께 호흡한 세계적 거장의 마지막 통찰 2013년에 타계한 세계적인 예술철학자이자 평론가 아서 단토가 예술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한 권에 집약한 유작 《무엇이 예술인가》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아서 단토는 “무엇이 예술작품인가?”라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50년 전 자신이 보고 ‘예술의 종말’을 선포했던 〈브릴로 상자〉를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 앤디 워홀의 오브제 〈브릴로 상자〉는 ‘브릴로’ 비누 세제를 운반하기 위한 포장 상자와 외관상 동일한데 왜 예술작품인 것일까?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작품을 결정하는 그 기준은 무엇일까?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의 미학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현대에 들어 실험적이고 탈경계적인 예술작품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다른 철학자들이 예술을 열린 개념으로 정리한 것과 달리 예술을 닫힌 개념으로 믿고 정의하려 애쓴 단토의 사유가 고색古色처럼 깊이 배어 있는 이 책은, 기존의 예술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작품들을 보면서 ‘이것도 예술인가?’라고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현대미술 안내서가 된다. 이에 미학을 전공한 역자가 세심히 각주를 넣었고,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원서와 달리 저자의 논의에서 주요하게 소개되는 작품들의 도판을 함께 수록하여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석학 아서 단토의 마지막 미학 에세이 단토는 한 물체를 예술작품으로 결정하는 데에는 아름다움처럼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지각적인 것과 무관한 존재론적인 특질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단토가 예술의 결정적 특질로 지적한 것은 ‘구현된 의미embodied meaning’이다. 흔히들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미적 특질을 떠나 한 작품 안에 어떠한 ‘의미’가 작가의 손에 의해 ‘구현’된다면 그것이 곧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단토는 자신이 생각한 이 예술의 본질이 어느 공간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단일한 것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푸생으로부터 마네, 뒤샹, 워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로부터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미술, 사진 등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끌어온다. 또한 플라톤이 정의한 모방으로서의 예술의 개념에서 시작해 시대에 따른 예술에 대한 다양한 논의, 그리고 데카르트, 칸트, 헤겔, 하이데거 철학까지 촘촘하게 엮어 예술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를 풍부하게 개진한다. 무엇이 예술이 되는지,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지― 예술작품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철학적인 기준을 탐사한다 1장 〈깨어 있는 꿈〉은 마치 20세기의 현대 미술사를 집약한 개관과도 같다. 사진과 활동사진의 발명 이후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강조하던 알베르티의 기준을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한 예술을 이야기하며, 피카소와 마네, 마티스 등의 인상파 화가들로부터 미국의 모더니즘 화가들을 거쳐 뒤샹, 워홀에 이르는 여정을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마침내 1964년에 이르러 자신이 ‘예술의 종말’을 선언케 한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 다다른 단토는, 브릴로 세제를 운반하기 위한 판지 상자와 똑같이 스텐실한 〈브릴로 상자〉가 어떤 특질을 가져서 예술작품이 되는지를 고찰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사이에는 ‘눈에 안 보이는’, ‘철학적인’ 특질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거기에서 당시 대중의 삶을 박제하려 한 앤디 워홀의 시선을 찾는다. 워홀이 부여하려 한 ‘의미’와, 그 의미가 ‘구현’된 것, 이것이 단토가 시사하는 예술의 철학적인 특질이다. 2장 〈복원과 의미〉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의 복원 작업에 대한 단토의 견해다. 복원이 세월의 흐름에 의한 먼지 더께만을 제거한 것인지, 미켈란젤로가 색이 바래고 먼지가 쌓일 것을 예상하며 그린 원 그림으로부터 영 멀어져버린 것인지에 대한 분분한 논쟁으로부터, 단토는 천장 벽화에 그려진 그림들의 관계를 통해 중요한 것은 색의 선명함이나 색채 그 자체가 아니라, 미켈란젤로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 그 자체임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로부터 〈술 취한 노아〉에 이르는 9개의 그림들이 〈이브의 탄생〉을 중심으로 양분되고 대홍수로부터 살아남도록 선택받은 인간 노아의 어쩔 수 없이 타락한(술에 취한) 모습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그 내러티브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단토가 보기에 복원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색감이 아니라 미켈란젤로가 구현해 내려던 이야기와 형상들이다. 이에 단토는 콘디비나 바사리 같은 동시대인들이 천장 벽화에 대해 그 색채보다도 구도나 원근법, 단축법 등에 감탄했음을 그 근거로 보탠다. 3장 〈철학과 예술에서의 몸〉의 경우에는 철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마음/몸 문제에 관해 다루고 있어 일견 다른 장들과 동떨어져 보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장에서 단토가 이야기하는 것은 예술에서의 몸이 또 다른 ‘의미의 구현’, 즉 ‘육화된embodied 마음’이라는 것이다. 단토는 데카르트가 논리상 몸과 마음이 독립되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몸과 마음이 별개거나 한 가지라는 차원을 떠나 마음이 육화된 것이 곧 몸임을 이야기하려고도 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제 몸에 이상이 생긴 것에 직감적으로 반응하는 아기의 차원에서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독립되어 있되 몸에 일어난 변화는 (의학 장비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몸의 주인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육화된 마음’은 유럽의 회화에서 풍부하게 드러난다. 푸생의 〈성가족〉 같은 그림을 볼 때 우리는 성 요셉과 성모마리아, 아기 예수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육아에 노곤한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로부터 아기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과학적 성취를 통해 고대 그리스 때보다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지만, 예술로 구현되는 양상은 고대 그리스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예술작품의 결정적 기준인 ‘구현된 의미’를 통해 예술이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여 늘 단일한 것임을 증명한다 〈경쟁의 끝〉이라는 제목이 붙은 4장은 예술들 사이에서 서로 우열을 가리는 ‘파라고네paragone’를 이야기한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 회화-조각 파라고네가 이어졌지만, 19세기에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릴 것을 주문받던 회화와 사진 사이에 파라고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진이 예술의 지위를 인정받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언정 인상파를 위시한 근대 이후의 미술들이 발달하기 시작한 그 맹아가 바로 사진의 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토는 그 덕분에 ‘이것도 예술인가?’ 싶은 작품들이 등장했음을 지적하며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구체화하는 데에 사진이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게 된 예술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은 그 너머 작가의 의도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5장 〈칸트와 예술작품〉은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논한 칸트의 예술 관념에 관해 이야기한다. 단토는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미적 판단에 대해 취향 등의 ‘아름다움’과 전혀 무관한 ‘정신’을 이야기한다는 데에 주목한다. 기교적으로 완벽한 도메니키노의 그림이 도메니키노 고유의 착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던 당시의 논란은 ‘정신’의 부족에 대한 완벽한 사례다. 도메니키노의 그림은 아름답지만 지금 그의 그림은 당시만큼 찬미되지 못한다. 반면 아름다움을 놓고 봤을 때 추하기까지 한 현대미술작품도 시대적인 맥락에서 빼어난 착상을 가졌다면 칸트의 관점에서 충분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이는 헤겔이 《미학 강의》에서 자연미와 구분한 ‘예술미’와도 통하는 개념으로, 예술작품에 화가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해 구현해낸 어떠한 의미를 일컫는다는 점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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