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BJ

8番目の男
平均 3.4
'배심원들'은 한국의 배심원제인 국민참여재판이 처음 시행된 재판을 극화한 영화다. 전문 지식 없는 일반인이 과연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는 배심원제의 영원한 딜레마이며, 바로 이 점을 배경 삼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한편, 이를 둘러싼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과 정의에 대한 여러가지 면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의 순기능에 집중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국민참여재판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법치와 정의에 대한 관념이 의심스러워졌다. 배심원들에 집중하는 영화는 개인적으로 딱 하나,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떠오르고, 드라마까지 가면 역대 최고의 법정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시즌 1'의 에피소드도 떠오른다. 전자는 배심원들의 토의를 통해 정의를 끝까지 수호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강한 의지에 대한 강렬하고 통쾌한 드라마이며, 후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배심원들의 구성에서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차이를 보여준다. '배심원들'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영향을 확실히 받은 구조를 띠고 있으나, 실화를 (어느 정도는) 바탕으로 하며 사법과 사회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하는 정신은 후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 전반적인 아이디어 자체는 좋다. 문제는 영화의 이야기가 전하는 주제가 상당히 당황스럽기도 하며, 전개 과정 자체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선 이야기의 전개 과정은 '12인의 성난 사람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배심원 한 명이 명백해 보이는 사건에 의심을 표하며 배심원 전원을 조금씩 설득시키는 방향으로 영화는 간다. 하지만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주인공은 확실한 논리와 이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배심원단과 관객을 휘어잡았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거의 직감과 감성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배심원단을 조금씩 끌어들이는 과정은 설득력이 매우 부족해 보였다. 주연 박형식의 연기도 도움이 안 된다. 대사 하나하나에 몰입을 시켜줘야하는 배우로서의 역할, 그것도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을 다 못했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나머지 배심원단이 모두 성격파 연기를 하고 있는데 주연 배우가 그 중심을 못 잡아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흠이다. 이 점은 영화의 주제적 문제로도 연결된다. 영화 초반에 문소리가 연기하는 판사가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법과 원칙을 무시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옳다면 정의다"라고 하는 듯하다. 박형식이 피고인의 무죄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과정은 과연 그의 캐릭터 자체 덕분일까, 아니면 이야기 도중에 "법과 원칙"을 깬 상황의 도미노일까? 배심원들의 잦은 일탈로 세운 정의는 정말 정의일까? 이것이 영화가 생각하는 법치주의 국가의 정의인가? 이 영화는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들도 냉철하고 꼼꼼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확증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오히려 비판하려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주제의식이다. 관객이 너무 멍청할까봐 후반부에 삽입한 플래시백을 감안하면 사실 감독은 일반 국민을 기만하는 게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안할 수 없다. 시각적으로 범행 장면과 현재 재판의 장면의 확연한 대비를 만든 점과 영화가 진행되며 조금씩 배심원들을 한명 한명의 클로즈업이 아닌 전체적 와이드로 잡는 점들은 좋았다. 하지만, 음악은 정말로 별로였다. 슬로우모션과 함께 클래식 음악을 배경에 까는 연출까진 좋았다 쳐도, 그와 전혀 안 어울리는 싸구려 스코어들이 정말 싫었다. 영화에 어울리지도 않는 명랑한 분위기를 깔려고 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