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장르적으로 별 흠잡을 데 없이 좋으나, 인물의 내면을 파헤치리라 선전포고한 영화 치곤 내면의 탐구에 대한 깊이가 부족하며 그 탐구조차 장르적으로 소비된다. . (스포일러) 개인적으로 우민호 감독의 전전작품인 <내부자들>은 근 10년간 가장 과대평가된 한국영화 중 한편이라 생각한다. 영화 바깥 얘기로 시작을 해보자면, 설사 영화 내부의 서사에서 발생한 사건이 영화 바깥인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할지라도, 그건 영화의 내적 완성도를 보다 고평가할 이유가 못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꽤 많은 관객들이 <내부자들>이 개봉했을 시 텍스트 바깥에 주목하느라 정작 텍스트 내의 공과에 대한 판단은 명확히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내부자들>엔 신랄한 비판이나 깊이 있는 풍자가 없다. 그저 나쁜 놈들이 나쁜 짓을 하고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나열하기만 했을 뿐이다. 엔딩 또한 터무니없었다. 시종 악의 커넥션을 비판하며 현 세태에 대한 한숨을 내뱉다 뜬금없이 어쨌든 정의는 살아있다 라고 대충 서사를 갈무리하는 엔딩은 나에게 퍽 기만적인 동시에 지나치게 타협적이라는 인상이었으며 덜 나쁜 놈이 매우 나쁜 놈들에게 행했던 그 복수의 방식에서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커녕 하나의 의문만을 품었다.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 그리고 그 의문은 이후의 작품인 <마약왕>에서 그대로 반복됐다. 정말 <마약왕>은 관객된 입장에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알 도리가 없었던 졸작이었다. 장르적으로 별 볼품없고, 사회역사적으로는 사회역사적인 척 제스처만 취하고 있었던 이 영화를 기점으로 나는 우민호 감독의 영화에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기로 다짐했다. . 헌데 그런 저조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10.26 사건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언뜻 궁금함과 기대가 동시에 앞섰던 게 사실이다. 사회역사적으로 별 하고픈 말이 없어 보이는 이 감독이 한국 현대사를 논할 때 가장 얘깃거리가 많을 것 같아 보이는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 결론부터 말하면 <남산의 부장들>은 우민호 감독의 모든 영화를 다 본 나에게 있어 가장 괜찮은 그의 영화였으며 동시에 굉장히 재밌는 장르영화였다. 영화 특유의 멋들어지고 세련된 미장센은 그저 고전 마피아 영화의 흉내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건조한 분위기에 적절히 조응한다는 인상이었고, 또 그 건조한 밑바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정치공작과 서열다툼의 서스펜스는 별 흠잡을 데가 없는 우수한 솜씨였다고 생각된다. . 태도의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나름 괜찮은 구석이 있다. 박통(이성민)의 신임을 사기위해 고문을 일삼는 박용각(곽도원)의 플래시백과 더불어 박통의 반복되는 그 두루뭉술한 명을 받고 박용각을 암살하는 김규평(이병헌)의 결단은 그 자체로 영화의 태도 표명이다. 각하의 신임을 사기 위한 동일한 목적, 똑같은 박통의 지시대사, 폭력, 혹은 살인이란 악한 과정, 그에 따른 토사구팽, 더 나아가 박통에 대한 배신이란 결론까지. 두 인물은 사실상 같은 층위에 묶이고 있으며(혁명을 누가 시작했는지에 대해 두 사람 모두가 긴가민가해 하는 대사는 이러한 맥락을 강조한다.) 영화는 이들의 악행을 의도적으로 반복 배치함으로서 이들을 마냥 독재의 집단에서 돌출된 정의의 사도로 그리고 있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 배우들을 거론하지 않고 넘어가기 섭섭할 만큼 연기의 측면에서 <남산의 부장들>은 최상급의 수준이다. 특히 두드러지는 건 아무래도 김규평 역의 이병헌과 박통 역의 이성민이다. 극의 말미에 이르기 전까지 능동보다는 수동의 감정이 훨씬 더 강조되는 배역의 특성 상 자칫 밋밋하게 여겨질 법도 했을 캐릭터를 이병헌은 특유의 섬세함으로 아주 탁월하게 연기했다. 연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는 올 한해 이보다 더 뛰어난 한국배우의 연기를 과연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를 남긴다. 이성민 역시, 타자화되어 평면적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던 캐릭터를, 배우를 지우고 배역만 남기는 연기방식으로 훌륭히 살려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박통의 얼굴만 봤을 뿐 이성민의 얼굴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 긴장감 넘치는 팽팽한 이야기에 더불어 애초에 중립이 불가능한 이야기를 최대한 냉정히 이끌어 가보려는 적절한 태도와 안정적인 연출, 거기다 더할 나위 없는 배우들의 호연까지 더해진 이 말끔한 장르영화는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만 어찌됐든 우발과 계획이 애매모호하게 뒤섞인 그날의 사태를 퍽 볼만하게 되살렸다. . 헌데 영화를 굉장히 재밌게 봤음에도 관람 후에 뭔가 이유모를 불만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했다. 우선, 이러한 감정은 평소 우민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다가 갑자기 재밌는 걸 보아 버려서 생긴 일종의 인지부조화나 반사적인 반발감은 절대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다. 내 생각엔 이 영화는 김규평의 내면을 얕게 탐구했다. 영화를 재밌게 보아놓고서 괜한 불평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이 영화엔 그런 불평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건 당일의 날짜에서 결과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남산의 부장들>은 결국 왜 김규평은 박통을 쏘았을까 에 대해 묻는, 즉 김규평의 내면을 묻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 물론 영화는 김규평의 그 결단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을 끝까지 마치긴 한다. 사실상 3인자로 내몰린 2인자의 수치심과 분노,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어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인간으로서의 불안감, 그리고 주변의 부추김 등등 이와 같은 여러 명분들이 배우 이병헌의 명연과 합쳐진 결과, 결국 관객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김규평의 동기가 완성된다.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죽은 김재규밖에 모르는 그의 심리를 재구성하는 게 과연 유의미한 시도였을까 라는 의문 정도는 남지만 어쨌든 <남산의 부장들>은 최소한 감독의 전작들처럼 하고픈 말이 없는 영화는 아니며 시작에 내던진 질문을 끝에 가서 회수를 하긴 한 작품이다. . 그런데 영화는 김규평이란 인물에 대해 그다지 입체적인 해석을 하진 못했다. 하나의 영화적 캐릭터로서, 김재규란 인물은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배신자, 혹은 민주투사 등등 그를 둘러싼 세간의 양분된 평가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그는 무고한지 아닌지도 모르는 시민에게 고문을 일삼으며 (영화의 내용상)필요할 땐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잔인한 면모도 있었지만 극중 가장 이성적인 인물이며 그와 더불어 계엄령을 절대 반대하는 최소한의 인격 정도는 지닌 양면적 인물이다. 영화는 이를 바탕으로 인물의 양면성을 적절히 다루는가 싶더니 극이 진행될수록 김규평이란 인물을 곽상천(이희준)의 버릇없음과 박통의 비인간적 면모에 저항하는 일종의 선의 축으로 고정시켜버린다. . 특히 이 과정에서 곽상천 캐릭터는 배우의 좋은 연기와는 무관하게도 상당히 기능적이고 평면적으로 활용된다. 그가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바로 김규평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다.(어색함을 감수하면서 굳이 나이가 어린 이희준 배우를 실제 차지철 역에 캐스팅한 의도부터가 나이도 어린데 깝죽대며 설쳐대기까지 하는 버릇없는 인물상을 만들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회색지대처럼 보였던 영화의 인물도가 점차 흑백논리로 구분되어지는 것의 단점은 비단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다. 누군가는 후반부의 이러한 설정에 대해 좌성향을 운운하며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거론되는 좌우논리에 대해 다 큰 어른들의 유치한 싸움이라 생각하는 나의 입장에서 영화의 정치적 스탠스는 별 관심사가 아니다. . 내가 생각하기에 영화의 후반부 서사의 가장 큰 결함은 바로 선과 악이 혼재하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그 사건을 소위 타란티노식의 직선주로로 바꿔버렸다는 것에 있다. 일전에 영화가 나름대로 김규평을 중립적으로 다루는 노력을 보였긴 하지만 갈수록 그건 중요해지지 않는다. 대사의 팔 할이 김규평에 대한 시비인 곽상천의 추태와 필요에 따라 토사구팽을 밥 먹듯이 자행하며 인권경시적인 폭언을 일삼는 박통의 행실, 그리고 일련의 배신감에 휩싸이는 김규평의 모습이 계속되면 결국 관객의 인지에 선과악의 구별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 그 결과, 관객은 궁정동에서의 총격을 냉정히 바라보지 못하고 되려 그 총성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텍스트는 진중한 사회정치드라마에서 인간적인 인물이 비인간적인 인물과 예의없는 인물에게 행하는 일종의 복수장르로 변하며 쉬이 얄팍해진다.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출 것을 약속했던 영화가 의미를 제 손으로 제거하는 대목이다. 이제부터의 영화는 그냥 재밌는 영화다. . 여기서 극중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박통 암살 장면을 다른 영화와 비교하고 싶어진다. 바로 같은 사건을 정 반대의 태도로 다룬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과 말이다. <남산의 부장들>과 <그때 그 사람들> 두 영화 모두엔 기술적으로 훌륭한 롱테이크 씬이 포진되어 있다. 나는 이 두 롱테이크의 차이가 두 영화의 차이점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 대 참극이 일어난 이후 피바다가 된 궁정동을 배우 한석규의 발에 맞춰 카메라가 부감의 숏으로 묵묵히, 그리고 냉정하게 따라간다. <남산의 부장들>의 카메라는 사건의 후가 아닌 사건 당시를 따라간다. <그때 그 사람들>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카메라 앵글을 유지했던 것과는 달리 김규평의 눈높이에 맞춘 앵글 시점으로 말이다. .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이 일으킨 여파나 아이러니를 추적하겠단 의지가 보이는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 해당 롱테이크는 큰 틀에서 영화 전체의 방법론과 적합하다. 헌데 <남산의 부장들>의 롱테이크는 그저 하나의 오락일 뿐이다.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그 롱테이크의 현장감은 파국을 한 바탕의 오락적 클라이맥스로 소비해 버릴 뿐 그 이상의 의의를 가지지 못한다.(이건 <살인의 추억>의 초반 논두렁 롱테이크 와는 다른 경우다. <살인의 추억>의 롱테이크는 별다른 컷 전환 없이 사건의 현장감을 전달해주는 경제성, 부실한 당시의 현장보존을 들어내는 사회성 등등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숏에 엮어낼 당위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 영화를 다 본 뒤 김규평이란 인물이 깊게 다가오지 않은 건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분노, 배신감 등등 여타 장르영화에서 활용될 만한 일차원적인 감정들로 인물을 손쉽게 사용한 선택은 결국에 관객의 주체적인 선택의 여지를 좁혀버린 결과를 낳는다. . 거듭 말하지만 나는 <남산의 부장들>을 정말 재밌게 보았다. 헌데 재밌자고 만 만든 게 아닌 것이 눈에 선한 데 정말 재밌기만 했으니, 그 외의 요소로 영화를 비판하는 건 괜한 꼬투리 잡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마지막 이병헌의 클로즈업이 만약 당시 김재규라는 인물이 육본이 아닌 남산으로 향했으면 지금의 한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라는 관객의 사유를 이끌어내기 이전에 김규평이란 캐릭터가 만약 남산으로 갔으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란 장르적 망상을 유도했다고 생각한다. . 그 당시의 김규평(사실상 김재규)의 내면을 해석하겠다 자청한 영화니 우리는 영화를 본 뒤 이에대한 자문을 할 필요가 있다. 김규평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지나치게 깝죽거리는 3인자에게 마땅한 응징을 한 인물? 혹은 1인자에 대한 배신감으로 방아쇠를 당긴 인물? 어느 쪽을 택하던 돌아오는 대답은 평이하고 밋밋하기만하다. 나에게 <남산의 부장들>은 장르적 수작인 동시에 굳이 우민호 감독이 역사극에 천착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게 한 범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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