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이대해

이대해

7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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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本 ・ 2010

平均 4.1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둔황>, 영화 <디어헌터>,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전자의 두 이야기는 파멸의 순간에서 인간이 취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이고, <대심문관> 이야기는 헉슬리가 말한 <또다른 행성의 지옥이라는 지구>에 과연 신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결국 이소설은 파멸의 순간에 취하는 인간의 자세와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칡과 등나무처럼 엉키고 꼬여 있다. . 여기에 한국인 작가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영어로 썼다는 점에서 또한번 꼬여 있다. . 소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 <난 평생 신을 찾아 헤매었소.” 그는 소곤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 고통받는 인간.....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뿐이었소." “그리고 죽음의 다음은?" "아무것도 없소! 아무것도!" . 그의 파리한 얼굴에는 엄청난 고뇌가 일고 있었다. "날 좀 도와주시오. 불쌍한 내 교인들, 전쟁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그리고 삶의 피곤에 시달리는 이들을 내가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시오. 고난이 그들의 희망과 믿음을 움켜쥐고 그들을 절망의 바다로떠내려 보내고 있소. 우린 그들에게 빛을 보여주어야 해요. 영광과 환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 “희망이라는 환상을 준단 말입니까? 무덤 이후의 죽음 이후에 대한 환상을 주란 말입니까?" . “그렇소!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이오. 절망은 이 피곤한 생의 질병이오. 무의미한 고난으로 가득 찬 이 삶의 질병입니다.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린 그 절망을 때려 부수어 그것이 인간의 삶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단순한 겁쟁이로 쪼그라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 전형적인 <대심문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 백인 주류의 한 질문 <대심문관> 문제 . 종교란 이름의 수 많은 학살과 더불어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