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는 일본으로부터 세 번의 초청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었다고 한다. 이유는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 이후 그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한국을 방문해 판문점에 들렀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만약 한국 작가였다면 한평생 통일에 대한 소설만 썼을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 한마디가 비단 우리나라 작가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이 나라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역시나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것이고, 동북아시아에 놓인 역사적 문제를 두고 언제나 투쟁하며 책임의식을 견지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뀔 수 있는 역사’에 있어 몰두하던 작가였다. 그리고 그는 독일 국민의 의식은 변화시켰다. 젊은 시절 나치친위대였던 그가, 나치의 반대편에서 양철북을 기점으로 ‘바뀔 수 있는 역사’를 다루게 된 원동력 또한 한편으로 오스카 같은 인물들이 너무나 많아서였다. 이 나라에도 오스카 같은 사람들이 득실대고 있음에도, 사회적 책임을 지려는 작가가 적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 흐름에 부흥하려는 작가는 많더라도, 팔 걷고 사회적 책임을 지려는 작가는 적다. 시대의 묘사도 중요하지만, 시대를 관통하려는 주제의식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니까 모두가 성장하지 않는 ‘오스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역사와 의식이 성장하지 않아 여전히 과거에 묶여있는, 더불어 성찰에 있어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모두가 귄터 그라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의 전위적 글쓰기는 단 하나를 가르쳐준다.
부끄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