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맹

ゴダールの映画史 第一章 すべての歴史 第二章 単独の歴史
平均 4.1
고다르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혁명가는 맞는 거 같다. 감히 영화사를 영화로 그리고 저 수많은 몽타쥬로 할 생각을 누가 하겠으며 또 이렇게 불친절한 레퍼런스 많게 프랑스와 유럽 중심으로 할 생각은 누가 하겠나. 혁명가라는 말이 이제는 낡은 단어가 된 것처럼 (라투르 said 총체적 혁명이라는 변화는 환상이었다) 지금에서 보면 관념적이고 총체적인 사고가 실제적 변화랑은 거리가 너무 멀어진 것 같다. 고고학이 아닌 영화의 계보학을 다시 쓰는 시도는 좋았으나 기존 영화사 (뤼미에르와 프랑스 유럽 중심)와 크게 다르고 색다로운 시각처럼 느껴지지도 않았고 이미지라고 해서 크게 또 다른 이미지나 충격적인 몽타쥬 그리고 나레이션도 없었다. 혁명가답게 자의식이 과잉이구나라는 건 느껴졌다. 물론 몇몇 엄청 좋은 문장들과 시도들도 있었다. 하지만 저는 겸허하고 변화도 사유도 자신부터 출발하는 크리스 마커 형님이 더 좋습니다 허허. 사실 잘 몰라서 그래여 저도. 근데 다 이해하라고 만든 건 아닌 거 같아요. 역사(들)이니까! + 영화사를 이해하기 위한 책 ‘영화의 고고학’ 이미지는 무의 시선이다. 말의 권력 이전에 불러 일으키는 것. 무의식 안에 있는 잠재적 사고의 부활과 현현이다. 그렇기에 다른 두 이미지를 병치시켜서 변증법적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 말그대로 성좌식 역사와 사유. 레네가 개혁자로서 실현되지 않은 어떤 것을 실현하는 인물로 보이는 데 반해, 고다르는 영화의 전제 속에 ‘현재적인 것’에 있어 완전히 새롭고 다른 것의 승인에 의해 나타나는 그런 잠재성을 보았다고 여겨진다. 이미지가 가득찬 시대에 역사로서의 현재. 현재를 기록하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적인 것으로 구원받아 불러일으키는 것. 행동해야 할 드러내야 할 현재성. 역사가의 임무란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 현실의 이미지와 이미지의 현실 사이에서, 역사적인 것과 시적인 것 사이에서 합류한다  + 이윤영 쌤의 논문 덧쓰기 영화, 영화가 했던 역사에 대한 무력함과 멜랑콜리아,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로 보게하는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