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프

산책하기 좋은 날
平均 3.2
오한기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이건 못 참지, 하며 바로 주문했다. (A few moments later) 책을 샀다고 바로 들춰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때’가 있다.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이 된 것처럼, 책이 나를 원하고 나도 책을 원하는 순간을 감지해야 한다. 얼마 전에는 그런 순간이 바로 이 책에 있었다. 어느 저녁, 온종일 누워만 혹은 앉아만 있다가, 이제 좀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데, 막상 나가려니까 귀찮아서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이 책이 내 옆에 있었다. 집어 들면서 중얼거리기를, 오늘이었네, “산책하기 좋은 날”. 서울을 산책하는 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주 서울에 가고 싶었고, 꼭 그만큼 집에만 있고 싶었다. “산책”하는 사람의 일기는, 집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도통 한 자도 쓰일 수 없으니까. 몸을 굴려 시간을 걸은 후에는, 그 허공에서의 행위를 종이 위에 활자로 붙박아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정말 귀찮고 힘들다. 그런 일을 오한기가 대신 해두어서 2022년 3월의 나는 안온한 침대 위에서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귀로 듣고 그런다. 물론 그의 다리로 부단히도 움직이면서. 책에 대한 감상은, 오한기의 글 위에 나의 일기를 살포시 얹어놓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하자. (일기가 2월 28일 이후로 끊겼다. 문제다.) “문학평론가 한영인은 오한기가 '소설가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고 했고, 그렇다, 오한기는 소설가를 등장시키고, 그는 당연히 소설을 쓸 테고,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서사로 소설을 쓴다. 소설가-소설이고 소설-소설이고 그러니까 메타-소설이다. 작년에 읽었던 오한기의 중편소설 『인간만세』(작가정신, 2021) 역시 그러했고, 그렇다면 오한기는 조만간 이 방향으로 나아가려나, 부딪히고 허물고 치워서 넓히는 작업을 계속하려나. 나는 나도 나를 그런 방식으로 넓히는 작업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바로 이 쓰기의 행동을 통해 수행할 것이고, 그렇기에 일기-일기를 쓰는 어느 일요일 오후에는 소설-소설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2022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