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경

せかいのおきく
平均 3.6
네 자판에 ㄹ이 고장났다면 나도 ㄹ을 쓰지 않고 너에게 사앙해! 라고 할래. 자음이 모조리 먹통이라면 ㅏㅏㅐ! 라고 할 거고. 자판 자체가 고장났다면 나도 내 자판을 내다 버릴래. 그땐 내가 와이파이라도 되어 마음을 전할 거야. 네 손에 닿는 언어만을 쓰겠어 난. 그러다보면 똥통에 눈이 쌓일 만큼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 답답해서 눈물이 날지도 몰라. 쌓인 눈 덕에 뭐가 똥인지 아닌지 모르도록 새하얀 세상이 될 거다. 아름다울 것 같지 않니. 사랑의 세계는 사랑이 없던 세계와 다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세계는 둥글게 휘어진다. 카메라 화각이 이상하게 변한 것이다. 온 세상이 화면 안에 약간 구겨 넣어진다. 모든 걸 눈에 담고 싶은 의지가 종종 사랑의 부산물이라서다. 더 많은 것이 소중해지면 그렇다. 너와 상관 있는 무수한 것들이 나의 세계로 틈입하니까. 세계가 급속히 무한해진다. 내가 너를 만난 이상, 이 세상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된 거다. 너가 좋아. 라는 말은 좀 애매하다. 그러니까 사람이 물에 두 명 빠졌을 때 나를 구하겠다는 건지, 백 명이 빠졌을 때도 나를 제일 먼저 구하겠다는 건지. 나는 알고 싶었다. 내가 네 생의 어떤 것들 위에 존재하는지. 내 존재가 얼마나 시급한 문제일 수 있는지, 나를 택하느라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 내가 제일 좋은지 아닌지. 아닐 거면 다 때려치워라. 청춘의 사랑은 좀 그렇게 극단적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랬다. 똥 묻힌 채로 바닥에서 뒹굴고 있다고 느껴서 그랬나봐. 나랑 함께 뒹굴 수 있는지 검증하고 싶었어. 나는 네 세계로 완전히 이민 갈 수 있다고 열심히 외치곤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