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일

Harvest (原題)
平均 3.1
영화에서 비추어지는 마을의 거목 켄트의 이미지는 결코 훌륭한 지도자가 아니다. 이미 그 마을의 주인이었던 아내와 혼인하여 아무런 노력 없이 계승을 통해 권력을 잡게 된, 그러니까 요즘 사회에서 흔히 일컫는 말로 표현하자면 '낙하산'이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켄트가 마을의 질서를 다스리는 방식은 상당히 어설픈 폭력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몰래 마을에 침범한 외지인들의 사정은 배격하고, 다짜고짜 물리적 형벌부터 취하고 보는 그. 마을 주민들에게 공개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개인의 위치와 힘을 실감시켜 주기 위한 일종의 본능적 결단. 쉽게 얻어낸 권력인 만큼, 본인의 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해 내야만 하는 왕관의 무게. 마을에는 켄트를 따라와 함께 귀농을 결심한 또 한 명의 친구가 있다. 그의 이름은 월터. 어쩌면 월터와 지도 제작자는 처음부터 필연적으로 유대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모두 마을 주민들의 시선에서는 그저 이방인이자, 방관자의 위치에서 머물 뿐인 존재들에 불과하기에. 특히나 마을 주민들에게 거슬릴 수밖에 없는 지도 제작자라는 직업. 그는 부르주아들이 일을 하달하면 특정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 마을의 지리를 지도로 그리는 직업을 가진 자이다. 하지만 부르주아들이 그에게 일을 맡기는 목적은 매우 불순하다. 그가 그린 지도를 참고하여 본인들의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물색해 내고, 법의 모순을 이용하여 마을의 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사업으로 대신한다. 그렇게 무기력한 주민들은 사회의 부조리라는 재난에 서서히 휩쓸려 간다. 살 곳을 빼앗기고, 직업을 잃기도 하며, 인간의 연대는 처참하게 끊어진다. 이제 그들이 살던 공간에 남은 것은 오직 도시화된 정서의 배금적 욕망뿐.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공간은 어느새 시대의 탁류에 오염되며, 인간의 순박함은 끝없는 의심으로 변질된다. 마치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을 생각나게 만드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 본연의 욕망적 실현. 때묻지 않은 자연의 미장센과 계속해서 충돌하는 인간 내면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의 실체화. 결코 세상의 아름다움을 희망하지 않는 영화의 염세적인 태도. <하베스트>야 말로 씁쓸하게 죽어가는 아름다움의 풍경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