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レビュー
여주찬
star4.5
||: Somewhere over the Rainbow :|| __ 인생이란 임의적으로 선택된 음악 한 곡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재생 버튼이 눌려진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멜로디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때부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그저 음악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어떤 사람에겐 그 음악이 한 소절의 끝없는 반복일 수도 있겠더라. 영화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프랑스 한 옥상의 그 색소포니스트처럼. 무지개 넘어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찾는 <Over the Rainbow>의 첫 소절을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영원히 그 어딘가를 갈구하고 있을 색소폰 소리가 뱃고동처럼 배 위에서 무한정 울려 퍼진다. 그에게 삶이란 단지 그런 것일 뿐이다. 도돌이표를 향해 항해하는 선원의 삶. 파리에 도착하는 순간 다시 파리는 뉴욕이 될 것이다. 천국보다 낯선 세상 위에서는 그 어디도 바빌론이 될 수 없다. 그에게 삶의 항해일지란 이미 완성된 묵시록이다. 벌써 자신의 운명을 깨달아버린 한 젊은이의 허세는 얼마나 고독한가. 그 역할을 연기한 크리스 파커의 필모그래피는 놀라웠다. 보이기론 이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자 (현재까진) 마지막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알로이셔스 크리스토퍼 파커라는 인물을 창조한 짐 자무쉬는 자신의 분신을 그에게 심어두었을 것이다. 그 역할을 감당한 크리스 파커는 연기자가 아니었던 것 같다. 정말 이 영화처럼 살아가는 한 히피족 젊은이에게 짐 자무쉬는 자기 자신을 동일시시켰던 걸까. 찰리 파커와 마찬가지로 영화 속 주인공과 영화의 연기자가 모두 가진 파커라는 성은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 파커에게, 짐 자무쉬에게 이 영화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질질 끌던 말과 발, 음영의 대비가 지독하게 진했던 화면, 시종일관 나른하고 무겁던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이 영화가 짐 자무쉬의 데뷔작이라는 점까지 더해보니 더욱 오묘한 기분이 든다. <천국보다 낯선>으로 이어지는 짐 자무쉬 방랑의 여정은 이미 첫 작품에서부터 시작되어 있었다. 얼마 전 엄마가 그런 얘기를 했다. 가끔 그냥 전부 다 내려놓고 저기 뉴질랜드나 캐나다에 가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아보고 싶다고. 한 평생을 청주와 대전에서만, 지금 아파트에서만 20년을 살아온 엄마였다.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당신도 마음속에 짐가방 하나 챙겨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아마 설령 뉴질랜드나 캐나다에 간다고 아무 걱정 없이 살 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해서 더욱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 엄마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희망하는 것뿐이다. 적어도 여기보단 낫지 않을까. 이 곳의 걱정과 족쇄를 모두 떨쳐버리고 내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면서 나는 나이 들어서 안 되고 너나 그렇게 살라는 엄마의 말이 서글펐다. 왜 사람은 사람과 사회와의 모든 관계로부터 떠난 영원한 휴가를 꿈꾸는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짐 자무쉬의 최근작이었다. 가끔 한 인물에게 공감이나 비애를 느끼게 되었을 때(이 영화의 알리에게, 그 알리로 분신한 짐 자무쉬에게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그 인물이 끝내 행복해질 수 없었다는 결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를 보며 느껴진 알 수 없는 우울과 <프리덤 라이터스>의 한 여학생이 <안네의 일기> 속 안네의 결말을 보며 냈던 화의 이유다. 반면 <영원한 휴가>를 통해 이토록 번뇌를 무심하게 받아들인 젊은이를 보여준 짐 자무쉬는 훗날 <패터슨>이라는 영화를 내보였다. 영화 속 패터슨은 더 이상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닌 정착한 사람이었다. 그 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캐나 가는 사람이었다. 아 나는 짐 자무쉬의 이런 변화가 내심 고맙다. 소심한 나는 결코 영원한 휴가를 떠날 수 없다. 아마 어딘가의 바빌론을 막연히 꿈꾸면서도 한 곳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보며 살아갈 테지. 내겐 알리의 삶보다 패터슨의 삶이 더 어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일상에서 유영하듯 살아가는 패터슨의 삶 역시 또 하나의 한낱 이상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또 그것이 한참을 방황하다 이 세상은 전부 천국보다 낯선 곳이란 걸 깨달은 짐 자무쉬가 하는 수 없이 정착해 살아가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나는 그 삶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영원한 휴가>의 반복되는 색소폰 소리가 사계절의 반복처럼 순간순간 아름다움의 반복이 될 수도 있는 걸까. 아직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눈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파도를 가르는 배의 물질은 의미 없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역시 자유롭기보단 권태로운, 그 게으른 풍경. 너무 비현실적이면서도 또 너무나 현실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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