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투박하고 서툴지만 딱히 불순한 의도 같은 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한편으론 순수한 열정이나 실제 인물에 대한 존중 및 진정성도 살짝 엿보이긴 해서 막 대놓고 모질게 까진 못하겠는, 착하긴 한데 못나기도 참 못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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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전개가 되게 엉성하고 전형적임. 클리셰도 거의 밥 먹듯 써대고, 서넛을 제외하면 배우들의 연기도 엉망인 편임. 번역 때문인진 몰라도 대사들은 착하다 못해 오글거리는 편이고, 액션도 어디다 내세울 만한 수준은 아님. 종합해 봤을 때 완성도로나 재미로나 건질 게 딱히 없는 사실상의 졸작이나 다름없음. 허나 그럼에도 막 미워할 순 없는 게, 대충 이렇게 하면 웃거나 울거나 감동받아 주겠지 하는 식의 안일함은 그닥 느껴지질 않았음. 잘 만들고 싶은 의욕도 있어 보이고, 잘 만들어보려 노력한 흔적에다 실제 인물을 향한 진심 또한 전해지긴 하는데, 실력이 영 따라주질 못해서 이런 아쉬운 결과물이 나온 느낌임. 때문에 어떤 면에선 안타까움마저 느껴지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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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주인공이 레슬링을 포기하고 mma로 전향하는 시점이 꽤 일찍 나옴. 체감상 중반부에 접어들기도 전인 것 같음. 때문에 질질 끄는 것 없이 전개는 빠른 영화겠구나 했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었음. mma에 도전하기 시작하고서 전개는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하고, 판에 박힌 대사와 메시지, 비슷한 장면들만 쭉 반복되면서 결국 예외없이 지루함이 밀려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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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씬의 연출이 아쉬움. 레슬링 경기는 별로 보여준 게 없어서 판단을 못 하겠으나, mma 경기 때는 현란하거나 타격감 있게 연출하려 애는 썼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져버렸음. 실제 경기에서는 가드에 막혀서 유효타 뜨기도 쉽지 않은데, 여기선 휘두르는 족족 클린히트임. 게다가 맷집도 뛰어나서 아무리 처맞아도 벌떡벌떡 일어남. 훈련된 선수의 펀치나 킥이 클린하게 박히면 영락없이 다운이거나 정신을 못 차리는 게 일반적인데, 다들 신나게 때리고 맞고를 반복하고 있으니 영 실감이 나질 않았음. 근데 그렇다고 타격감이 뛰어나다거나 움직임이 막 화려한 것도 아니었음. 그냥 그런 방향으로 연출을 했다 뿐이지, 액션으로서 즐기기엔 영 애매한 수준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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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많이 아쉬운 퀄리티를 자랑하는 가운데, 그래도 주인공의 외팔 분장? Cg는 생각보다 티가 별로 안 나서 다행이었음. 찾아보니 닉 역을 맡은 코디 크리스티앙 배우는 양 팔 다 잘 갖고있는 비장애인 배우 같던데, 영화 속에선 티가 거의 나질 않아서 진짜 한 쪽 팔이 없는 배우를 캐스팅한 건가 싶었음. 아니면 여기에 공을 들이느라 다른 부분들에 신경을 못 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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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제목이 '왼 팔의 복서 닉'인데, 너무 대충 지은 듯함. 일단 주인공은 오른손으로만 싸울 뿐더러 엄밀히 따지면 복싱 기반의 선수도 아님. 게다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레이놀즈 전에선 타격이 아닌 서브미션으로 승리했음. 아무리 직관적으로 와닿게 지은 제목이라 해도 너무 성의가 없음. 무조건 복싱경기를 해야지만 복서라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실제 닉 뉴웰 선수의 스타일과 정체성을 고려했을 때 '왼 팔의 파이터'라고 짓는 게 그나마 팩트를 조금이라도 더 반영한 제목이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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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뉴웰 본인은 영화를 보고 만족했다고 하지만 실제 사실과 다르게 각색한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음. 아마추어 레슬링 팀 활동을 할 땐 영화에서처럼 쩌리 취급을 당하지 않고 무려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다 하고, 실제 라이놀즈 전을 보면 영화에서 보여준 것만큼 심각하게 고전하지도 않았음. 딱히 밀리지도 않았고, 심지어 경기 시작 1분 20초만에 서브미션으로 1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뒀음. 극적인 재미를 위해 각색이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만 실제와 다른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중반까지 느꼈던 나름의 진정성에 의심이 들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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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상대 선수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하고, 가족 및 주변 사람들은 관중석에서 주인공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고, 해설진은 옆에서 경기해설과 더불어 그런 모습들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그러는 와중에 링사이드에 있는 코치의 조언을 듣고 번뜩한 주인공이 기지를 발휘해 마침내 승리를 거두는 그림. 겨우 이런 뻔하고 진부한 그림을 만들어내려고 그렇게 살을 덕지덕지 붙였다 생각하니 좀 괘씸하게 느껴지려 함. 게다가 기껏 이렇게 극적으로 길게 늘려 놓았건만, 결국 막판에 잠깐 보여준 실제 경기 영상의 희열과 감동에 비하면 거진 새 발의 피 수준이라 좀 헛수고를 했단 느낌도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