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로키를 다룰 줄 몰랐거나 로키를 다루고 싶지 않았다. 속임수를 쓰고, 속내를 알 수 없고, 언제 배신할지 모르고 온갖 이목을 끄는 기행을 하며 자신에 심취하고 불안에 젖어 언행불일치를 일삼는 아스가르드의 왕자를 활용할 수 없었기에, 엔드게임에서는 그냥 죽여버렸고, 단독 드라마 시리즈에서는 로키를 로키가 아니게 만들었다. 다른 의미에서, 죽였다. 일단 다짜고짜 파일럿에서부터 로키를 전형적인 직선형 캐릭터로 아주 납작하게 만든다. 로키는 자신의 미래와 과거를 보고는 그 길고 길던 자아의 발전 과정을 모두 그냥 건너뛴다. 엑기스나 모럴오브스토리, 교훈, 반성 아무것도 끄집어낼 생각이 없다. 그냥 간략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소회하고 그걸로 마무리한다. MCU의 로키가 가진 관계나 모티브나 클리셰, 버릇과 눈빛 그 어떤 것도 계승하지 않는다. 이건 마치 MCU의 배우를 쓰고 MCU의 장면을 짜집기 하겠지만 이 드라마의 주연은 다른 캐릭터이며 다른 스토리라인을 가지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는 ‘여성 로키’ 실비를 보여주는데, 그 실비 역시 아무것도 로키가 아니다. 앞뒤 상황에 대한 뛰어난 통찰도 없고, 자격지심도 없고, 불안과 거짓말도 없으며, 허영심도 없고, 교만함이나 열등감도 우월감도 없다. 아스가르드인으로서의 자긍심도 서리거인 아이덴티티도, 아무것도 없다. 작가며 감독이며 프로듀서며 그 누구도 로키의 내면에 애정이 없어서, 그 위에 적당히 마음에 드는 다른 캐릭터를 덮어쓰기를 한 느낌이다. 장르적 연출 자체도 교활하고 비겁하다. 주인공이 거짓말쟁이니까 굳이 블랙코미디나 범죄스릴러일 필요는 없지만, 로키인데 정공법 추리수사물로 시작해 재난 탈출 버디액션 따위를 버무리고 음모론을 섞은 보스 퇴치에는 어떤 기발한 발상도 없다. 이건 로키가 아니어도 만들어지는 얘기이며, 오히려 주인공이 로키이기에 어색해지는 이야기의 틀에 로키를 우겨넣은 격이다. 그냥 드라마로 본다면 재밌을 수도 있겠다. 어떤 버라이어티나 장면 장면이 모인 집합으로 여긴다면 유쾌한 이스터에그와 인사이드조크의 만발이고 이게 신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가장 한심한 점은, 엄청나게 쏟아지는 플롯의 구멍을 시시각각 설명하는 대사들이다. 왜 TVA가 타임리셋을 못하는지, 왜 로키 성격이 다른지, 왜 이렇고 왜 저런지를 하나씩 덧대는 말들의 향연이 너무나 피곤하고 지루하며 거추장스럽다. 차라리 엔드게임의 뻔뻔한 엔트맨 새럼의 노래처럼(어벤져스가 새럼 없다고 타령하고 난 뒤 타노스는 어떻게 거대함선을 부하까지 태워 워프시켰나) 스스로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아무런 설정 설명이나 안하면 최면에 홀린듯 크레딧 끝나고 나서야 시시껄렁 지적하며 말 얹는 선에서 끝나지,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이 장면 장면마다 코멘터리마냥 세계관의 새는 파이프에 덧대는 방수테이프적인 멘트들은 낯뜨겁고 민망하다. MCU 드라마는 그냥 넷플릭스가 만들게 냅둬야 했는데 디즈니는 굳이 기어이 자신들의 전체관람가 공장에 이 캐릭터들을 유괴했어야 했던 것이다. 돈 벌려고. 제시카 존스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는 그 깊고 인간적이며 존엄했던 발버둥의 서사가, 데어데블의 세계가 보인 깔끔하고 완벽했던 느와르가, 퍼니셔가 보인 분노와 변화의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의 세계에는 없다. 주인공은 다루기 쉬운 캐릭터A가 되어야 하고, 전체 톤은 가디언즈오브갤럭시 같은 증명된 가족 테마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모니터 보면서 어깨 으쓱으쓱하고 손바닥 보이며 와이와이 하고 고개 절레절레하느라 바빴다. 사실 로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데, MCU에서는 위험하고 예민한 박사였다가 이상하게 유쾌하고 어정쩡한 푼수가 된 헐크보다야, 유부남이라는 것 외엔 특별히 서사도 없다가 나중엔 범죄조직에 살인화풀이하는 호크아이보다야, 혹은 개인 스토리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히어로 여친”들 보다야, 로키야말로 그나마 완성되서 굳혀진 캐릭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인물 하나를 이렇게 묽디 묽게 희석시키고 희석시키는거 자체가, 그러고도 흥행 성적으로 용서되는 것 자체가 너무 짜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