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오병훈

오병훈

1 year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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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고 천박하게

本 ・ 2025

平均 3.7

편지, 서간문이라는 매체의 물성에 대하여. 모든 것이 쉽고 빠르게 전해지는 시대이다. 클릭 몇 번이면 메일을 보낼 수 있고, 전화와 텍스트를 주고받고 실시간 소통이 즉각 가능하다. 시대상의 변화와 기술의 진보에 따라 수 많은 매체는 죽음을 맞이하고, 새로이 탄생한다. 최근, 전보 서비스는 운영을 종료했고, 삐삐라는 수단의 사라짐과 동시에 숫자로 나누던 간단한 메세지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럼에도, 편지는 죽지도 않고 살아있다. 차가운 물성들로 가득해 따뜻함이 결여된 동시대에, 편지의 존재는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저마다의 소통을 대변이라도 한다는 듯 떳떳하고 고고하게 존재한다. 사월과 훤의 서간문도 같은 지점에 서있다. 상대에게 보내는 편지는 결국 너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하는 거라고 그들은 서로에게 귀기울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귀기울이고 서로에게 질문함과 동시에 본인 스스로에게도 질문한다. 심보선 시인의 <그을린 예술>의 서문이 떠오른다. 각박한 일상 가운데 삶의 주인 자리를 내어주는 방법으로 글(시)쓰기를 선택했던 시인의 투사적 모습의 발현이 꼭 직업적인 성취가 아니라, 편지를 쓰고 읽는 우리 개개인에게도 자신을 살리는 일로서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간문은 다른 글의 장르와는 다르게, 보낸이와 날짜 등이 특정된다. 과거에서 쓰여 미래에 누군가에게 읽힌다. 글쓴이와 독자가 분별되어 존재한다. 설사, 나에게 쓰는 편지라 할 지라도 편지를 쓰는 시점의 나와 읽는 시점의 나로써 시공간의 각기 다른 좌표아래 각각 존재하는 것이다. 심보선 시인의 서문을 소개하며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사월과 훤의 편지는, 서로를 살리는 기폭제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그들의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누군가의 몸과 마음도 살린것이다. 심보선 <그을린 예술> 中 서문 “오히려 소외되고 내몰리는 각박한 삶 속에서 작동하는 소박하지만 생생한 예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인 내가 꿈꾸어 왔던 꿈이기도 한다. 회의 시간에 짬짬이 남몰래 시 한 편을 써 내려 갈 때, 나는 투사나 영웅이 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살고 싶었다. ‘마지못해, 죽지 못해’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잘,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이러한 동경과 소망은 소시민의 자기 위안으로 치부할 수 없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추구되는 소박하고 생생한 꿈은 사회구조가 할당한 역할과 기능을 거스르는 장소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삶 속에서 꾸는 꿈으로서의 예술을 ‘그을린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을린 예술은 지나치게 엄숙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다. 그을린 예술은 타들어 가고 부스러지는 현대인의 삶, 자본주의의 격렬하고 성마른 불길에 사로잡힌 우리네 삶 가운데서 꿈틀거리는 꿈, 긍정성의 몸짓, 유토피아적 충동이다. 그러므로 그을린 예술은 언제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을린 예술은 불길의 위협 앞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춘다. 살기 위해서,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을린 예술은 삶을 재창조하려 한다. 그을린 예술은 우리에게 삶의 주인 자격을 되돌려주려 한다.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다른 곳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삶 속에서, 삶의 불길에 그을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