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오세일

오세일

1 year ago

4.5


content

小川のほとりで

映画 ・ 2024

平均 3.6

예술가는 태어날 때부터 필연적으로 예술가가 되어야만 하는 본능을 쥐고 이 세상에 탄생하는 것일까. 적어도 <수유천>에서의 홍상수는 그렇다고 굳게 믿는 것만 같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었기에 억지로 여수 공대에 입학했다는 전임. 하지만 그러한 전임은 어느 날 갑자기 양쪽 눈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눈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는데 뜬금없이 붕대를 감은 눈앞에 푸른 하늘이 펼쳐지는 기적을 목도하게 되고, 그 직후 바로 대학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쨌든 예술가로 태어난 운명은 어떻게든 예술을 해야만 한다는 하늘의 계시였을까. 그렇게 전임은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flowing water'라는 이름의 한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데, 서울에 위치한 천을 중심으로 역으로 흐르는 물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역류하는 천의 흐름,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결국 예술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대중이 의식하는 한 사람에 대한 '논란'과 그가 행하는 '예술'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형태의 불편한 공존일까. 홍상수는 개인이 겪은 논란(불륜)과 본인이 행하는 예술을 통해 그러한 딜레마를 흥미롭게 읊어낸다. 극 중에서 가장 관객의 입장으로 비추어지는 전임이라는 존재. 그녀는 원래 촌극의 각본을 집필하던 남학생이 거기에 출연하는 3명의 여학생과 각자 따로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에 굉장히 불편해하며, 그를 혐오하기까지 하는 듯한 자세로 일관한다. 그리고 또한 본인이 굉장히 존경하는 교수와 남학생을 대신하여 촌극의 감독을 맡기로 한 외삼촌 사이의 묘한 기류에도 찝찝한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남학생과 만난 3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지'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외삼촌의 자기 고백. 촌극이 매우 좋지 않은 반응을 받은 뒤 씁쓸하게 시작된 뒤풀이 자리. 그를 촌극의 감독으로 섭외한 전임과 총책임자인 교수는 총장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불려가고, 외삼촌은 촌극에 출연한 나머지의 여학생들 앞에서 본인의 과오를 고백한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 우리는 그 말을 통해 영화에서 두루뭉술하게 언급되던 유명인 외삼촌의 논란이 불륜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기 고백의 시간은 잠깐에 그칠 뿐, 곧바로 학생들의 즉흥시를 빙자한 삶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타인을 꼭 안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리고 진정한 삶의 길을 찾고 싶다는 여학생들의 솔직한 마음 털이의 현장. 아마도 전임과 교수가 총장에게 끌려간 이유는, 단순히 촌극의 반응이 좋지 않아서가 아닌 그 촌극을 감독한 대상이 바로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던 존재였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홍상수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본인이 하는 예술이 비겁한 자기변명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본인에게 있어서는 하고 싶은 예술을 발산하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누가 봐도 홍상수 본인의 삶과 모습이 투영된 외삼촌이라는 인물, 그리고 대중들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전임이라는 존재. 하지만 엔딩에서의 전임을 생각해 보자. 그동안 홍상수의 작품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이미지의 정지. 외삼촌과 교수가 애타게 전임을 찾자 프레임의 구석에서 환하게 웃으며 달려 나오던 전임을 비추다가 별안간 툭 정지해버리는 숏. 그렇게 전임은 그들의 관계가 불편하게 다가올 때도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고 다시 그들의 앞에 등장한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달마저도 수도 없이 모양이 바뀌고는 하는데, 어찌 한낱 인간이라는 존재의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엔딩의 전임은 바로 홍상수가 바라는 '논란'과 '예술'이 별개로 받아들여지는 세계의 주체이며, 비록 현실에서는 결코 이해받을 수 없는 결론일지라도 홍상수는 꾸준히 개인의 예술관으로 빚어낸 소우주를 창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