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平均 4.0
문장이 유려한 작가는 많지만 여러 소재를 엮어 큰 울림을 주는 작가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대단히 탁월한 성취를 보여준다. 7개의 아름다운 단편들이 뒤로 갈수록 서로를 끌어안는 형태로 나아가면서 결국 모두가 한 지점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소설보다는 비문학을, 텍스트보다는 영상을 좋아하는 편식이 심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초반 두 편의 단편은 어쩌면 조금은 어리둥절하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점점 책을 읽어 나갈수록 작가가 기본적으로 사람과 우리관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이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고 과학과 우주용어가 난무하는 단편들 속 몇몇은 울컥하기도 하였다. 과학에 문외한인 내가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7개의 단편들이 모두 우리 사회의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는 어떠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고 그러한 작가의 관찰력이 나를 슬프게 하기도, 나를 되돌아 보게도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 어떻게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싶은 <관내분실>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다. '관내분실'이라. 인간의 마인드를 데이터로 저장할 수 있는 도서관에서 하필이면 관계가 소원했던 우리 엄마의 인덱스가 사라진 이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내에서도 사회에 '존재'하고 있지만 '분실'된 것처럼 살아가는 삶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한다면, 가슴이 아릿하면서도 등골이 서늘한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였다. . '엄마는 마치 없는 사람 같았다. 최소한의 흔적만을 남기고 그냥 그렇게 살다 가버린, 이제는 없는 사람.' . 돌아가신 엄마의 유품상자 속을 찾아도 찾아도 적당한 것이 나오지 않는 현실이, 김은하라는 이름은 지워진 채 두 아이의 엄마라는 명찰만이 어깨를 짓누를 때의 그 감정이, 내가 여성이자 한 여성의 딸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민이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를 찾았을 때, 은하가 지민의 손끝을 잡았을 때, 나도 나 자신을 찾은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 결국 이 소설은 소외되고 낮은 곳들을 향한 항해이다. 계급을 나누고 다름의 벽을 세우는 복잡한 세상이 아니라 태초의 박동하는 생을 찾아 나서는 모험이다. 이 생생한 경험을 이 책을 통해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서 잠시나마 행복했다. 오랜만에 읽는 소설의 묘미를 조금이나마 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