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レビュー
chan
star3.5
- 여성들의 연대로 이뤄낸 모성으로의 귀향- . . . . (스포일러) 영화 ‘귀향’의 세계는 철저히 여성들의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에 있는 건 여성들의 연대다. 영화 속 여성들은 무엇을 위해 연대하는가? 영화의 시작이 되는 질문이다. . 여성들의 연대에서 남성들은 철저하게 배재된다. 영화는 부모의 묘를 닦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하고,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와 어머니를 보여주며 끝난다. 이러한 시작과 끝의 중간에서 남성의 역할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죽은 것으로 보이나 존재감이 역력한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저승에 박제되어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 인지된다. 영화 속 몇 안 되는 남성인 레스토랑의 주인마저 영화의 초반부에 마을을 떠나가며 스스로 여성들의 세계에서 멀어진다. 극중 잠시 나오는 영화사의 남성 직원은 어떠한가. 그는 철옹성 같은 여성들의 세계에 입장을 원하며 라이문다에게 은근슬쩍 구애하지만 결국 존재감 없이 사라진다. . 이처럼 몇 안 되는 남성들이 무력한 영화의 세계에서 어떻게든 영화에 영향을 끼치는 남성은 라이문다의 남편이다. 라이문다의 남편이 딸아이의 신체를 추악한 시선으로 쳐다볼 때, 우리는 불길한 징조를 느낀다. 남편이 딸아이에게 가할 금기시 되는 성적인 폭행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 달리 라이문다의 딸은 우발적인 살인으로 아버지의 성적인 폭력에 대항한다. 라이문다의 딸의 친부가 라이문다의 아버지라는 믿기 힘든 비극이 공개되면 그제야 왜 이토록 영화가 남성성을 억제하였는지 와 왜 여성들이 연대해야 되는지 가 분명해진다. ‘귀향’에서 여성들의 연대는 본인들을 억눌러온 남성들의 성적인 폭행으로부터의 저항의식에서 기원한다. 이처럼 ‘귀향’은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에 대한 찬가이며 동시에 뒤틀린 성적권력을 무분별하게 자행해온 아버지에 대한 책망이다. . 영화 속 어머니들은 남성의 성적 악행들로부터 본인, 그리고 본인의 딸들을 필사적으로 지켜야만 한다. 라이문다가 살해된 남편의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까지는 흡사 스릴러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허나 영화는 약간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며 진행되긴 하지만 라이문다의 시체유기가 발각 되느냐 마냐의 문제는 진진하게 다루지 않는다. 라이문다의 죄를 도와주는 이는 있을지언정 라이문다의 죄를 추적하는 이는 전무하다. ‘귀향’의 서사는 딸아이의 우발적인 살인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시체를 유기하게 된 어머니에 대한 스릴러가 아닌, 왜 그녀들이 뭉쳐야 하는지 와 왜 돌아가야만 하는지 에 향해있다. . . 라이문다는 이제 본인의 딸을 아버지의 성적 악행으로부터 지켜내야만 한다. 하지만 스스로도 본인의 아버지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던 라이문다이기에 이러한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혼자서 겪어내기엔 너무나 참혹한 비극이기에 그녀는 다른 여성들과 뭉쳐야 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누군가의 딸이기에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처럼 영화 ‘귀향’에서 여성들의 연대는 모성으로의 귀향으로 곧장 직결된다. . 라이문다가 돌아가야 할 이유가 확립된 뒤, 유령인지 사람인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어머니의 존재가 강력하게 대두된다. 초반에는 유령처럼 암시되었지만 미용일도 거들고 라이문다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어쨌든 그녀는 실존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둘째와 어머니의 관계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나 라이문다와 어머니의 사이에는 오랫동안 쌓인 불편한 기류가 존재한다. 그리고 라이문다는 어머니를 미워한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를 미워하는 동시에 그리워한다. 영화의 제목과 동의어인 노래 ‘volver’를 부르는 라이문다와 이를 몰래 엿듣는 어머니의 모습을 교차로 편집한 장면은 모녀의 애증관계가 담긴 최고의 명장면이다. 후에 라이문다는 죽은 줄만 알았던 어머니를 마주하자 반사적으로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허나 곧이어 우리가 보는 장면은 어머니를 보러가겠다는 결심을 한 채, 돌아가는 라이문다의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는 둘 사이의 갈등이 모두 해소된 것처럼 보이는 밤으로 점프한다. 이처럼 영화는 오랫동안 묵은 모녀지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을 모두 생략한다. 결국 ‘귀향’은 모녀간의 애증관계에서 방점이 찍힌 부분은 미움을 뜻하는 ‘증’이 아닌 사랑을 뜻하는 ‘애’ 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러한 애증은 모성이라는 거대한 순리 앞에서 무의미함을 주장한다. . . 라이문다가 ‘volver’를 부르는 장면 외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앤딩이다. 모든 갈등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의 끝에서 어머니는 갑자기 유령은 울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딸과 작별한다. 뜻밖의 고백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종결되는 영화의 앤딩은 약간 어리둥절하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유령인 것일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라이문다가 마침내 귀향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더욱 중요한건 자신 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죽어가는 한 여성의 마지막을 보살피기 위해 기꺼이 유령이 된, 모성이라는 아름다운 불가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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