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르릉. MGM 수뇌부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주연 여배우가 수두에 걸려 격리되었소. 다른 여배우는 불어밖에 할 줄 모르고. 이미 시나리오의 절반은 날아갔을 거요. 진켈리가 날라간 부분을 율동으로 채운다고 난리고 감독은 그걸 말리다 두들겨 맞고 쫓겨난 상태요” 이런 뒷수습만 전문으로 하는 까마귀들이 있다. 존 포드, 빌리 와일더, 존 휴스턴 같은 하이에나들. 나 역시 다른 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영화에는 흥미가 없었기에 구미가 당겼다. 사건 현장을 둘러본 뒤 MGM 회의실에 들렀다. 이사진들이 손수건을 말아 쥔 채 땀을 닦고 있었다. “어떻게 안되겠소? 할리우드에 붓질하는 놈들은 죄다 우리에게 청구서를 보내오고 있소. 보름 동안 의상에 40만 불, 세트에 50만 불을 썼소. 진 켈리가 우리 회사를 파산 시킬 거요.” 나는 그들을 안심시키고 한마디 덧붙였다. 다른 처리반이 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회장이 낙심한 얼굴로 시가를 한대 건넸다. “그럼 감독 자리에 자네 이름이라도 쓸 수 없겠나?” 시가에 불을 붙이지 않고 곧바로 일어섰다. 애초에 사건은 성립하지 않았다. 화가들은 스무 가지의 노랑 중에 가장 어울리는 노란색을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무용수들은 무언가를 한아름 보듬어 격조 있는 발레를 추었다. 현장에선 사라진 각본 대신 경쾌한 발구름이 대사로 오갈 뿐이었다. 시대의 낭만과 풍요를 그릴 땐 언제나 시나리오보다 두꺼운 수표책이 필요한 법. 딱히 내가 손 댈 구석도 없었다. 뒷문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뒤뜰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기념하는 기차 조각상이 있었다. MGM에게 오스카 작품상을 쥐어 준 영화였다. 나른한 오후, 트레이드 마크인 하품하는 사자와 뇌가 없는 허수아비 경영진. 그리고 달리지 않는 양철 조각상은 그들 앞에 몰아칠 행운을 눈치채지 못했다. 문을 열면 나타나는 총천연색의 모험에 이미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