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양기연

양기연

10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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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タクシー

映画 ・ 2015

平均 3.7

지극히 현실에 가까우면서도 지극히 영화적인 공간으로 변모한 택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추악한 리얼리즘을 갑주 삼아 질주하다. 감독이나 스탭의 손이 아닌 민중의 공간인 택시에 실려, 혹은 민중 자신의 손에 들려 움직이던 카메라는, 택시가 멈추자 아예 민중의 영역으로 영영 포섭되어 버린다. 이제는 '직접 말하라'고 외치는 순간, 더 이상 영화는 멈출 수도 없고, 멈추어서도 안 된다. . (2015.11.9) (스포일러) . 이란은 영화 제작 및 상영에 있어서 검열과 제재가 굉장히 심한 국가이며, 이 영화의 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어 20년간 영화 제작이 금지된 상태이다. 자파르 파나히가 직접 택시를 몰며 택시 안에 설치된 카메라들과 스마트폰으로만 촬영을 진행한 것은 그러한 제약 하에서 영화를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으리라. 그러나 이 영화의 경우, 오히려 그러한 제약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영화의 힘이 더욱 강력해진 케이스이다. . 택시는 그 자체로 대중들과 밀접한 대중교통수단이면서, 운전자와 승객 간의 거리가 가장 가깝고 그 때문에 대화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대중교통이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택시 합승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란의 경우라면 승객들 간의 토론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즉, 이란의 민중들이 겪는 현실을 무엇보다 가까이서 조명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또한 택시는 그 자체로 계속해서 달리고 움직이는 공간이다. 따라서 택시에 매달려 있는 카메라도 민중들의 생의 공간을 이곳저곳 누빌 수 있는 운동성을 획득하게 된다. 더불어 카메라를 택시 내부 쪽으로 돌리면 카메라가 정지한 것처럼 보이고, 카메라를 택시 전면창 쪽으로 돌리면 카메라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중성 역시 매력적이다. 결국 자파르 파나히가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택한 택시라는 공간은 지극히 현실에 가까우면서도 지극히 영화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 그 연장선 상에서 영화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의 경계를 적극 활용하려는 듯 보인다. 이 영화는 얼핏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여러 요소들로 미루어 볼 때 다큐의 외피를 취한 극영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영화는 이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파르 파나히 본인이나 인권 변호사 나스린 소투데가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출연하고 실제 이란에서 있었던 곤체 가바미 사건을 언급하는 등, 각본이 존재하고 배우들이 출연하고 동선을 사전에 정해 두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와 현실의 간극은 극히 좁다고 할 수 있다. 극중에서 자파르 파나히의 팬을 자처하는 불법 DVD 대여업자 오미르는 자파르 파나히의 다른 특정 영화처럼 배우들을 등장시켜 다큐멘터리인 양 상황 설정을 한 것이 아니냐고 자파르 파나히에게 묻고 자파르 파나히는 이에 그저 웃어 보인다. 이 장면은 영화의 목적이 '이 모든 게 진짜'라고 관객을 속이는 데 있다기보다는, 주어진 환경 하에서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 이러한 형식 때문에 극중 인물들이 전달하는 사연은 그것이 각본에 따른 연기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굉장한 현실감을 지니게 된다. 누군가는 가난을 견디지 못해 저가 자동차의 타이어까지 훔쳐야 하며, 어떤 강도는 가난한 이들의 것은 훔치지 않는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여성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므로 사고를 당한 남편을 병원에 데려가서까지도 자신에게 재산을 상속하겠다는 남편의 유언을 녹음한 동영상을 전송받는 데 열을 올려야 하고, 또 누군가는 미신에 깊이 빠져 전전긍긍한다. 웬만한 외국의 영화는 극장 상영은커녕 DVD 등도 수입하지 않아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현직 영화감독까지도 불법 DVD 대여를 통해 영화를 보아야 한다. 여성은 배구 경기를 보러 갔다는 이유만으로 옥에 갇히고, 그의 인권을 위해 변호하던 변호사는 정직 처분을 받는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단편 영화 촬영 과제를 내 주고는 영화 촬영 지침으로 '추악한 리얼리즘을 피하라'며, 이 모든 비참하고 부당한 현실들에 눈 감으라 말한다. .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가끔 카메라의 위치만 조정할 뿐 단 한 번도 직접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는 움직이는 택시에 매달려 있음으로써, 이따금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또한 자파르 파나히가 카메라를 들지 않는 와중에, 극중 자파르 파나히의 팬이자 불법 DVD 대여업자인 오미르와 자파르 파나히의 조카인 어린 학생 하나가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드는 모습을 보이고, 이때 영화는 그들이 찍는 영상을 따라 진행된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자파르 파나히 본인이 국가의 제재로 인해 카메라를 들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는 카메라가 민중들에게 가까운 공간이자 민중들의 생의 공간 사이로 질주하는 공간인 택시를 따라 스스로 움직임으로써, 혹은 민중들 자신의 손에 직접 들린 채 움직임으로써, 이 영화 속 이야기들이 곧 이란의 민중 그들의 목소리가 되게 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자파르 파나히와 그의 조카 하나는 아예 택시 밖으로 나가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지고, 대신 택시를 털러 온 강도들이 카메라를 챙기게 된다. 그나마 이전까지는 카메라가 자파르 파나히가 모는 택시 안에 있었고 가끔 자파르 파나히가 손을 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영화의 결말에서 카메라는 온전히 자파르 파나히의 영역에서 벗어나, 민중, 그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강도의 손으로 들어감으로써 그야말로 이란에서 생을 영위해 가는 이들의 것이 된 셈이다. 이로써 영화는 완성된다. 이것이 그토록 국가가 외면하라 말했던 '추악한 리얼리즘'이며, 이것이 그토록 눈 감으라 말했던 현실이다. 추악한 리얼리즘을 갑주 삼아 현실 사이를 내달리던 택시는 결국 멈추었지만, 오히려 그 자리에서 영화는 민중 자신들에게, 현실 그 자체에게 '직접 말하라'며, '직접 보여달라'며 카메라를 넘긴다. 때문에 영화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