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훈남

キャリー(2013)
平均 2.7
2024年05月28日に見ました。
피칠갑한 인물이 격노를 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도 장황하다. 심지어는 격노를 하게 되는 원인도 억지스럽고 인물의 감정선이 하나도 와닿지를 않으며 이 영화 하이라이트와도 같은 절정 부분 역시 긴장감이라든지, 어떠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이 영화의 매력인 '잔인함', '짜릿함' 같은 감상은 영화의 연약한 전개에 힘입어 당최 할 수가 없을 정도. 장르는 '공포'면서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것부터 이 영화의 정체성은 진작에 곤두박질쳐있다. “이 인적 드문 곳에서 마음의 평온을 느낀다. 몸은 약간 평온하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 하다. 시간이 지나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천국에서 나의 탄생을, 왜 드디어 화염에 휩싸인 내 부모 곁의 천사들이 두 번이나 예언하였는가?” 그렇다고 이 영화가 배우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인물들의 캐릭터는 하나도 구체화되어 있지 않으며 감정선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생뚱맞다. '갑자기 이렇게 느끼고 변화한다고?' '나라면 절대 안 그럴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이입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배우들이 아무리 열연을 쏟아도 어딘가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고 연출, 스토리, 연기 모든 것이 따로 노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여러모로 미운 구석이 많은 작품. “네가 상처받는 건 싫어.” “그냥 기뻐하시면 되잖아요.” 어떠한 집단 안에서 약자가 되는 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것의 시작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사실에 대한 무지일 수도 있고 한순간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다거나, 그들의 시야 안에 포착되었다거나 이유는 정말 다양하기 때문이다. 폭력은 자연재해와도 같다.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고 그에 대한 대비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수였다. 자신도 방관이라는 폭력에 가담했지만 이내 죄책감을 느끼고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그 방관자의 위치에 서있는 평범한 사람들 역시 바로 관객들이다. “오늘 투표 결과가 어떻든 너가 여왕이야.” [이 영화의 명장면] 1. 졸업파티 이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졸업파티씬은 모든 장면이 예상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만이 나오기를' 기대하게 되는 묘한 재미가 있다. 이 영화에선 피칠갑된 인물의 분노를 어떻게 다룰까? 업그레이드된 그래픽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충격을 선사할 수 있을까? 호기심 때문이라도 장면 자체에 몰입하게 되며 이것은 사실 '연출의 위력'이라기보다는 '원작의 존재감' 덕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때문에 이 장면은 '튀려고 하지 않고 원작 그대로의 매력을 되살린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리메이크를함에 있어서 그 장면 그대로를 가져오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바로 도망치는 거야. 애들이 웃고 소리지리는 건 볼 여유가 없어." 2. 엔딩 이 장면은 주인공인 캐리의 살생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명하는 순간 같았다. 영화 속 수많은 주인공들이 궁지에 몰리면 결국 칼을 꺼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영화는 '캐리가 정말 그렇게까지 격노할 일이 있을까?'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사람이 죽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줘야 하는 유일한 가족은 자신을 부정한다는 점들이 결국 그녀를 미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피해자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날 아프게 하지 마, 캐리.” “왜 안 돼? 난 항상 아팠는데.” 그녀가 흘리고 있는 피가 다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탐폰을 그녀에게 던지지 않고 건네주었더라면 결국 그 모든 책임은 방관자들에게 있다 “캐리에겐 일종의 능력이 있었어요. 하지만 나와 같은 애였죠. 여러분과 똑같았어요. 그 애에게도 희망과 두려움이 있었죠. 그런데 우리가 건드렸어요. 자꾸 건드리다 보면 무너지게 돼요.” #세계월경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