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오세일

오세일

3 day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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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ce

映画 ・ 2009

平均 4.4

얼핏 보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감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고국의 정글이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는 <열대병>과 <친애하는 당신>이, 지난 역사의 저편을 영화라는 작업을 통해 현대로 인양한다는 점에서는 <찬란함의 무덤>이 겹쳐 보였다. 다만 <인디펜던시아>는 보다 더 미니멀리즘적이다. 자연의 야외적 풍경을 세트장으로 대체하는, 혹은 최소한의 가족 구성원으로 진행되는 공동체의 소수화 등이 영화의 조그마한 물리적 부피를 체감케 한다. <찬란함의 무덤>은 현대의 사람들이 밟고 있는 땅에 존재했던 몇 세기 이전의 왕족과 궁궐에 대한 풍경화를, '현대인의 육신을 입은 그 시절 공주의 영혼'이라는 피사체의 복무를 통해 언어적으로 재건축한다. 21세기의 태국에서 과거를 추억하며 고향의 땅을 거니는 공주의 실감 나는ㅡ마치 가이드 같기도 한ㅡ표현 덕분에, 관객은 화면 상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상영할 수 있게 된다. 그에 반해 <인디펜던시아>는 무성 영화의 텍스트를 빌려 온다. 흑백, 아이리스 숏, 투박한 원형 안에서 재현되는 트라우마 연출 등. 극 중에서 인물들의 트라우마는 별개의 씬 혹은 시퀀스로 할애되지 않는다. 만화책처럼 잠을 자는 이의 머리 위에 떠있는 원형 안에 트라우마를 돌출시킴으로써, 악몽을 꾸는 듯한 피사체의 모습이 담겨 있는 숏과 동일한 프레임에 트라우마를 새겨 넣는다. 이처럼 여러 구도의 화려한 촬영/편집보단 미장센의 경제성과 정면 숏 위주로 연쇄된 이미지들의 나열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 필름 영화의 (잊혀가는) 향취를 동반한다. 어쩌면 '잊혀가는' 역사와 영화의 기적적인 만남. 무성 영화의 양식 위에서 다시 쓰이는 필리핀의 역사는, 그렇게 21세기의 한 젊은 예술가의 손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된다. 영화의 초반,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주민들의 귀에 달갑지 않은 침입의 소음이 들려온다. 침입의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를 그려보게 만드는 소리. 영화의 프레임 내부에는 서구의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서구가 내는 어떤 소음(들)이 자꾸만 틈입한다. 총기의 발사음, 폭발음, 필리핀 여성을 겁탈한 미군의 목소리가 프레임 너머에서 내부로 틈입하는 순간, 더 이상 필리핀은 그들의 것이 아니게 된다. 노래의 선율을 빼앗긴 주민들은 살기 위해 마을을 버리고 하나둘씩 정글로 숨어들기 시작한다. 야생에 정착한 주민들은 서서히 문명으로부터 멀어지고, 서구로부터 빼앗긴 삶이 원래의 일상을 잠식한다. 그런 부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필연적으로 '빼앗긴 삶'이 '원래의 일상'으로 인식되는 비극을 경유한다. 하지만 결국 정글 내부로까지 전이된 서구의 폭력. 기어이 일상이라 생각했던 아들의 세계마저 빼앗아버린 서구의 손끝에, 역사는 저항보단 투신을 택한다. 그리고 영화는 투신한 역사의 잔해를 길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