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어느새 프랭크와 영화는 그토록 닮아 있었다. . (스포일러) . <좋은 친구들>에서 코파카바나 클럽 안을 돌던 롱테이크 숏을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아이리시맨>의 첫 씬에서부터 퍽 묘한 심경에 사로잡힐 것이다. 하나의 공간을 쭈욱 훑는 롱테이크로 구성된 이 영화의 첫 숏은 여지없이 <좋은 친구들>의 롱테이크 숏을 연상시키지만, <좋은 친구들>의 롱테이크가 화려하게 차려입은 인물들로 가득한 코파카바나 클럽을 도는 반면, <아이리시맨>의 첫 숏은 이미 쇠락해 버린 노년의 인물들만이 가득한 요양 병동 안을 떠돌고 있다. 그리고 <좋은 친구들> 속 롱테이크 숏에서의 카메라가 스테디캠으로 흔들림 없이 유려하게 움직이는 반면, <아이리시맨> 첫 숏의 롱테이크는 마치 그 공간 안의 인물들처럼 지쳐 있는 듯한 핸드헬드 카메라의 거친 움직임을 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좋은 친구들>의 롱테이크에서 카메라가 앞서가는 주인공의 등 뒤를 마냥 따라가며 앞으로의 이야기에 관련된 인물들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조망한다면, <아이리시맨>의 첫 롱테이크에서 카메라는 홀로 뒤뚱뒤뚱 저벅저벅 걸어 앞으로의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들려줄 화자이자 주인공인 프랭크 앞에 청자로서 도착한, 주인공과 분리된 완전히 독자적인 존재이다. . 카메라가 프랭크에 이르기 전까지 프랭크의 목소리는 외화면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으로 들려오지만, 카메라가 그의 앞에 청자로서 도착해 착석하는 순간 시런의 목소리가 내화면의 노년의 프랭크의 육성으로 이어진다. 그 뒤 영화는 프랭크의 발화를 매개 삼아 프랭크와 그의 아내, 러셀과 그의 아내가 함께 빌의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다 지미 호파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던 시점의 플래시백으로 넘어간다. 노년의 프랭크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요양 병동의 씬들을 제1영역이라 하고, 프랭크 부부와 러셀 부부가 자동차 여행을 하는 시점에서 출발하는 씬들을 제2영역이라 하자. 그리고 제2영역에서 그들이 탄 차가 부인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숙소에 머물기 위해 멈출 때마다, 다시 프랭크와 러셀이 처음 만난 시점부터 제2영역의 시점까지 차근차근 회상해 오며 진행되는 플래시백이 끼어든다. 이 부분을 제3영역이라 하자. 제2영역과 제3영역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프랭크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보이스오버는 곧 제1영역에서의 프랭크의 발화임을 우리 관객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 모든 플래시백들은 결국 프랭크의 발화를 타고 전달되는 프랭크의 기억으로써 재현된, 가공된 과거들일 것이다. . 그런데 제2영역의 도입부에 굉장히 흥미로운 포인트가 등장한다. 네 인물이 차를 타고 출발할 즈음, 갑자기 이 영화의 원작 제목이자 지미 호파가 프랭크 시런과의 첫 통화에서 말한 바 있는 "I HEARD YOU PAINT HOUSES(자네가 집에 페인트칠 한다는 말을 들었네.)"라는 문장이 거대한 타이포로 화면 전면에, 다수의 인서트 숏으로 나뉘어 제시되는 것이다. 청각적으로 제2영역을 지배하는 것이 프랭크의 보이스오버라면, 시각적으로 그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카메라 그 자체라는 선언과도 같은 타이포. 말하자면, 제2영역 및 제2영역으로부터 뻗어나온 제3영역은 화자인 프랭크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이에 기반하여 청자인 카메라가 '보여주는' 이야기로써 이중적으로 재현되는 영역이다. 제1영역에서 카메라는 프랭크에 앞으로 돌아앉은 순간부터 그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저 멈춰 있지만, 제2영역에서 카메라는 동적으로 움직이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3영역에서 카메라는 프랭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정보를 문자로 화면 위에 제시하는가 하면, 프랭크가 사족처럼 덧붙이는 정보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과거 혹은 미래의 모습을 인서트 숏으로 끼워넣으며 시공간을 훨씬 자유로이 넘나들기도 한다. 마치 프랭크가 제1영역-제2영역-제3영역을 거칠수록 점점 젊어지는 것처럼, 카메라도 플래시백으로 구분되는 그 영역들을 거칠 때마다 더 젊어진 듯 자유분방하다. 그 모든 이야기는 프랭크와 영화가 함께 프랭크의 젊은 기억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재현하며 완성해 가는 이야기이다. . 프랭크는 러셀이 자신의 인생을 바꾼 인물이라 말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지미 호파와의 첫 통화 직후 패튼 장군과 대화를 나눈 것만 같았다고 말한다. 그의 인생에서 러셀과 지미는 거대한 두 축과도 같다. 제3영역은 프랭크가 그들을 만나고,그들 사이의 갈등이 촉발되고, 프랭크가 일종의 매개자가 되어 그들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중재해야 했던 그 과정들을 프랭크의 일생에 거쳐 보여주는 영역이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그에게 전달해야 해"라는 대사를 매개 삼아, 러셀과 토니 살레르노와 프랭크 간의 대화 씬과 지미와 프랭크 간의 대화 씬을 바쁘게 오가는 교차편집 시퀀스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영화'는 프랭크의 회고에 기반하여 프랭크와 다시 한 번 그 순간들을 재현함으로써 그 모든 순간에 프랭크와 동참하고 있다. . 제2영역은 프랭크가 자신의 인생의 한 축이었던 러셀과 동행하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인생의 다른 한 축이었던 지미를 죽여야만 하는 그 아이러니한 순간을 담고 있다. 프랭크는 모든 결정에 있어서 러셀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프랭크가 러셀로부터 비행기를 타고 디트로이트로 가서 지미 호파를 살해할 것을 제안받는 씬에서, 카메라는 러셀의 숏과 프랭크의 역숏을 바쁘게 오간다. 프랭크의 역숏은 러셀의 등을 프레임 왼편에 둔 오버더숄더 숏이다. 그런데 이 씬을 구성하는 러셀의 숏에서 러셀은 단 한 번도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는 반면, 프랭크의 역숏에서 프랭크는 매 숏마다 러셀을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한 번씩 마주본다. 단 한 번도 고민없이 러셀의 심부름을 수행하던 그가, 자신의 인생의 다른 한 축인 지미 호파를 죽여야 하는 그 극심한 고뇌의 순간에서, 프랭크는 제3영역을 통해 러셀과 지미와 관련된 자신의 모든 순간들을 이야기의 공동재현자로서 함께 동참했던 '영화'의 의견을 구하려는 러셀과 카메라를 번갈아 보는 것이다. . 프랭크의 인생을 구성하는 두 거대한 축이 러셀과 지미였다면, 이 영화의 제2영역을 구성하는 두 거대한 축은 프랭크의 보이스오버를 통한 청각적 재현과 카메라를 통한 시각적 재현이라 말한 바 있다. 프랭크가 러셀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미 호파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 마침내 그를 죽이는 순간까지, 영화에서 프랭크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은 잠시 등장하지 않는다. 프랭크가 자신의 인생의 하나의 축인 러셀의 제안에 따라 다른 축인 지미 호파를 죽여야 했던 것처럼, '영화' 역시 제2영역의 하나의 축인 카메라의 재현에만 오롯이 의존한 채 다른 한 축인 프랭크의 보이스오버를 제거해야 했던 것이다. 어느새 프랭크와 '영화'는 이렇게나 서로를 닮아 있다. . 프랭크의 인생의 한 축이었던 지미의 죽음은 프랭크의 손으로, 지미의 단말마와 함께 짧게 처리된다. 그의 인생의 나머지 한 축이었던 러셀의 죽음은 교회를 간다며 떠나는 러셀의 모습에 겹쳐 제시되는 프랭크의 짧은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으로 언급될 뿐 시각적 재현의 순간조차 갖지 못한다. 프랭크의 뒤늦은 고백이라도 듣고자 찾아온 요원들은 이제 관련된 모든 인물들이 모두 죽었고 남은 사람은 지미의 가족들 뿐이라 말한다. 프랭크의 인생을 지켜본 딸들은 그를 두려워 하고, 요양원의 간호사는 지미 호파가 누군지조차 알지 못하며, 신부는 프랭크가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있는지 여부만이 중요한 듯 보인다. 프랭크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관을 고른다. 모두가 떠난 그의 곁에는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청자로서 앉더니 그의 기억을 동등한 이야기꾼의 입장에서 함께 재현하며 그의 인생에 동행해 준 '영화' 뿐이다. . 제2영역에서 프랭크는 지미의 살해를 결심해야 하는 순간 카메라를 여러 번 마주 본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제1영역에서 카메라가 청자로서 그의 곁에 앉을 때 프랭크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제1영역에서 롱테이크로 움직이던 카메라는 프랭크의 앞으로 돌아 앉은 순간부터 그의 발화가 끝날 때까지 정지되어 있다. 그리고 프랭크는 정지된 카메라 옆의 무형의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형태를 가진 물체로서의 카메라는 그 자리에 내려놓은 상태이고, 청자이자 그의 이야기의 공동재현자인 '영화'가 그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어쩌면 프랭크와 '영화'는 스크린과 카메라 프레임 너머로 그들이 함께 재현한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을 '관객'을 제3의 청자로 상정하고 그 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마지막 숏에서 프랭크는 신부에게 방문을 닫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제3영역의 한 씬에서 지미 호파는 프랭크와 스위트룸에서 함께 잘 때 자신의 침실 문을 열어두고 잔다. 프랭크는 지미 호파가 프랭크가 그곳에 왔음을 누구도 몰라야 하기 때문에 그를 스위트룸에서 함께 자도록 한 것이라고 보이스오버로 말한다. 그렇지만 바깥에 프랭크가 있음에도 그렇게 침실 문을 열어두고 잔다는 것은 그만큼 프랭크를 신뢰하며 프랭크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 지미의 심리 상태의 발로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후로도 지미는 프랭크를 그토록 신뢰했으며 그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 마지막 숏에서 카메라는 프랭크의 침실 방문을 나서서 그 열린 문틈 사이로 프랭크를 바라본다. '영화'와 '관객'이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프랭크를 바라보고 있다. 지미가 결국 프랭크에게 죽임을 당한 것처럼, 프랭크의 삶을 함께 재현한 '영화'와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의 재현물을 감상한 '관객'은 어쩌면 프랭크의 삶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오히려 그의 삶을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프랭크는 '영화'와 '관객'에게 문을 열어둔 채 잠든다. 어쩌면 자신에게 은유적 총구를 겨눌 수도 있을 그들이야말로 이제 그의 삶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상대일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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