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조오닉
8 years ago

희랍어 시간
平均 3.8
한강의 소설이 다루는 소재들은 사람들이 살면서 한 두 번은 스치듯 생각해봤거나 떠올려 봤지만 자신이 그 생각을 했다는 걸 미처 인지하지조차 못한 채 지나갔을 법한 것들이다. 읽고 있으면 어쩐지 느껴본 적도 없는 것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내가 스스로 떠올리지도 못하는 그 어떤 순간의 이미지들이 글자 속에 붙들려 있는 걸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이런 감정과 기분이라는 게 한글로 옮겨질 수도 있는 거구나, 이런 소재들의 조합이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구나 생각한다. 사용되지 않는 언어가 사어로 죽어가듯이, 누군가 꼭 붙들어 매어주지 않으면 훌훌 사라져버릴 것 같은 세상의 어떤 언어조각들은 우여곡절 끝에 여기에 남았다. 희랍어라는 아름다운 사어는 한강의 소설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