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환

ワン・バトル・アフター・アナザー
平均 4.1
미래를 꿈꾸던 지난날의 랑데부도 잊은 채, 언덕마루 너머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질주하던 관성적 전투를 멈추고, 오늘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혁명 언어라 믿는 이 시대의 영화. .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틈이 없지만, 차라리 더 길었더라면 좋았을 부분이 없지는 않기에 개인적으로는 그의 최고 영화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 시대의 영화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될 운명적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운명이 타고난 작품이라기보다는, 스스로 그 운명을 자처하며 등장한 것만 같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서 시작된 영화는 그 이름을 담지 않아도 명확하게 이 시대를 조명하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급진적 좌파 조직의 자칭 혁명 또한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겠지만, 여전히 혈통에 집착하는 백인 민족주의자나 강경 기독교 민족주의와 같은 극우 집단 역시도 오늘날에 두드러지고 있으므로. 불꽃과 연이은 폭발이 점철된 프롤로그로부터 16년 정도의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지만, 어쩐지 둘 다 현재인 것만 같은 이 영화의 핵심 배경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어두운 면을 지운 채 국가의 결핍을 덮어버리며 역사를 미화하려는 기득권이 있다. 동시에, 건국으로부터 뿌리내린 인종적 배제와 폭력의 역사를 이어가려는 이들이 있고, 그런 세상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좌절 속에서 여전히 과거에 매달리는 이들도 있다. 권위주의적 정권과 그 체제에 돌진하는 돈키호테식 혁명 사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결국 이들 모두가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점이다. 한때 어떠한 미래를 꿈꿨던 젊은 날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 사람들인 것이다. 총은 과거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혁명의 불꽃이자 목적 없는 관성적 분노의 상징이 되고, 모자는 체제를 지탱하는 권위의 가면이자 언제든 벗겨질 수 있는 허상에 불과하지만, 혁명이든 권력이든 결국 폭력과 권위라는 두 축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언제나 불꽃이 터지던 하늘 아래에서 함께했던 섹스는 곧 폭력의 역사와 그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은유로, 결국 그들의 다음 세대도 본인들의 의지가 아닌 부모 세대의 약속을 짊어진 채, 같은 전투의 언어(암호)를 반복하게 된다. 다음 세대를 찾거나(빼앗거나), 혹은 지키려는 병적인 집착 속에서, 이전 세대는 자식마저 자신들의 유산이라 착각한다. 그 착각은 두 갈래로 흘러, 어떤 이는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라 여기는 ‘착오’로, 또 어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했다는 죄책의 ‘과오’로 드러난다. 혁명과 저항이 한처럼 맺힌 이들의 혁명 언어가 그 옛날의 고전 영화 “알제리 전투”인 것처럼, 분노와 냉소, 허세와 폭력이 가득한 옛 과거의 언어를 쓰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아무리 “알제리 전투”가 옛 혁명의 신화이자 민중 봉기의 교본이라지만, 지금 시대는 몇 번의 총격으로는 도저히 바뀔 세상도 아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다. 순진할 정도로 멍청한 나는 정보의 아카이브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 디지털 시대일수록 거짓과 갈등은 없어질 줄만 알았지만, 스마트폰이 발달한 시대에 양분된 사람들은 좀처럼 공생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악마를 위해 싸우겠다는 옛날의 싸움들은 어느덧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도,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각자가 꿈꾸며 같은 미래를 향해 만나자던 지난날의 랑데부(영화에서는 “암호”)는 잊은 지 오래다. 초반의 명확한 적과 명분이 지나 이제는 관성의 지속일 뿐인 싸움이었다. 왜 싸웠는지도 잊은 듯한 관성적 분노들. 다음 언덕마루 너머에 뭐가 있을지 보지도 못한 채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향해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중요하지도 않다는 듯 가속을 멈출 수 없는 질주 같은 나날들이었다. 체제에 속하는 것도 덧없고, 체제를 뒤집는 것도 덧없을 뿐, 어차피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다음 전투가 오기 마련이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며 애써 지나쳐온 덧없던 나날들을 근본으로 삼아 시간을 변명으로 쓰는 것을 멈춰야 할 때, 과거의 전투에 얽매어었는 대신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현재를 함께하는 것. 혹은 태어난 다음 세대를 위해 지킬 것. 그것이 진짜 혁명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고립과 단절로는 결코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낼 수 없는 법. 구닥다리 옛 것들을 무시하는 것도, 철없는 요즘 것들을 배척하는 것도 아닌 서로의 시대와 문물을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보라. 미래를 꿈꾸던 지난날의 랑데부도 잊은 채, 언덕마루 너머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질주하던 관성적 전투를 멈추고, 오늘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혁명 언어라 믿는 이 시대의 영화다. 다시, 이 영화는 현재 전투의 기록이고 방향이자, 언젠가 또 다른 세대에게는 오늘을 담아낸 미래의 "알제리 전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