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1부가 끝나기 전까지 자막을 계속 봤다. 아니 솔직히 말해 자막만 봤다. 영화는 피사체가 된 인물이 카메라 앞에 앉은 채로 구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내게 필요한 정보는 그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회가 진행될 수록 그들의 표정과 얼굴, 제스쳐, 잠깐 끊어지는 숏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지에 관한 괜한 걱정. 오직 상상만으로 지금 당사자의 입에 이야기되고있는 장소에 내가 가본 것 같은 물리적 경험을 겪었고, 이들의 부고 날짜가 화면에 드리운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기록된 사건이 아니라. 저 봉인된 시간 속에 오직 증언만으로 살아 움직이는 영화, 아니 어쩌면 유령의 증언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환영적인 경험이었다. -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광화문 일대를 조금 걸었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행이라는 것. 혹은 거대한 악의 형상이 나타나면 우리가 피할 수 있을까. 혹은 그와 대면했을 때 살아남는다면 그게 온전히 내 덕일까. 물론 둘다 아니란 걸 잘 안다. 그건 순전히 운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저 영화 안과 밖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겠는가. 결국 영화가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이 무력함을 체험하는 일이다. - <사령혼>을 보면서 며칠 전 본 <김군>이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김군>은 분명 좋은 영화인데 나 스스로가 지나칠 정도로 이 영화에 박한 평가를 내렸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오늘 <사령혼>을 보고 아무래도 그건 왕빙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먼저 접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왕빙은 아무것도 찍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이 영화를 만들었다. 두 영화의 형식은 분명 유사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왕빙만큼 세심하고 사람에 관한 존경으로 다큐를 찍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엔딩 크레딧에 (인터뷰를 하지 못한 희생자분들께 사과를 전합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울컥한 감정이 들었던 것도 그 이유다. 세상은 여전히 왕빙과 같은 관찰자에 의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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