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Sleep away

Sleep away

8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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牯嶺街少年殺人事件

映画 ・ 1991

平均 4.1

참 세련된 방식으로 찍은 영화인 듯. 몇 수위에서 놀고 있는 듯한 높은 미의식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밤씬들은 아예 넋을 놓고봤다. 영화미학의 또다른 극단을 본 느낌. '날 바꾸려들지 마라' 이건 분명 정당한 요구인 데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을 생각해보면 좀 위험하게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병렬 진행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을 개도의 대상으로 보고 바꾸고 싶어하는 샤오츠의 독선적인 욕망과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바꿔야한다는 정당한 욕망이 이 병치속에서 비슷한 것으로 여겨질 위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또 다른 이야기축인 아버지의 경우를 보면 영화가 샤오츠의 폭력을 그렇게까지 보고 있다는 생각은 또 안 들었다. 국가의 폭력에 정신을 파괴당한 아버지는 약해져서 그만 가족들에게 '치졸한' 폭력을 휘두른다. 이 폭력은 분명 '치졸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샤오츠의 폭력도 아버지의 폭력처럼 그렇게 '치졸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바깥에서 싸움에서 진 남성들은 그 실패를 복구하고자 여자친구나 가족들을 통제하려든다. 아버지가 '나한텐 이제 당신과 아이들 밖에 없다'고 말할 때 과연 그 의미가 무얼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지하고 사랑할 사람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자신의 상처입은 권위를 복귀할 대상을 말하는 건가? 사회적 권위를 잃었으니 이제 가정안에서 너희에게만 내 권위를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인가? 어머니는 함께 싸우자고 겁나지 않는다고 말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동료가 되고 싶은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는 애초에 여자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답답한 장면중 하나였다. 어쩌면 그러한 아이디어는 살면서 한 번도 머릿속에 떠올려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샤오츠도 마찬가지다. 샤오마나 허니도 마찬가지고. 그들은 여자친구와 함께 '편을 먹을'수도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자친구를 동료가 아니라 그냥 보호하거나 취하거나 개도해야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것 같다. 남자들 이야기를 볼 때의 어떤 답답함이 있다. 답이 안나온다. 매번 같은 잘못을 질리지도 않고 반복한다. 이야기로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어쨌든 이 뒤틀린 폭력을 합리화하기 보다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긴했다. 연민도 있고. 근데 이것도 좀 그렇다. 대체 언제까지? 연민은 물론 고마운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바뀔 생각을 해야지 연민을 면죄부로 삼아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매번 당해야하는 사람은 심정이 어떻겠는가? . 남자 주인공에게는 바깥세계가 타자화 되어있는 것 처럼 여성들 또한 늘 타자화 되어 있다. '나는' '세계를' 바꾼다. '나는' '세계와' 싸운다. 처럼........ '나는' '이 여자를' 어째야한다. 근데 따지고보면 자기도 세상의 일부이고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근데 이상하게도 남자 친구들과는 함께 싸우고 함께 슬픔을 나누고 다 할 수 있지만........ 여자는 '여자문제'가 될 뿐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영화였던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에필로그를 대학합격 발표로 끝낸 건 참 아쉬웠다. 마지막에 생각해야 할 것이 고작 그런 것이었을까? 비할바없이 탁월한 미적감각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도무지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 주체는 내맘대로 안되는 게 당연하지만 대상은 내맘대로 안될 때 분노하게 된다. 대상이 내맘대로 안되면 대상을 '다루는' 자신의 능력이 의심 받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근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사람은 다 주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