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살살

살살

4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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ひなぎく

映画 ・ 1966

平均 3.9

"세상 모든 게 썩어간다. 우리도 썩어 버리자." " 왜 우릴 망가뜨리려고 해요?" "더 신나는 일을 찾아야겠군." "왜 사람들은 난 널 사랑해라고 말할까. 더 좋은 말도 있잖아. 이를테면... 달걀!" "여기 지금 내가 누워 있지만 여기 누운 게 내가 아니라고 상상해봐" "파괴된 걸 복구할 수 있을까." "도와줘요. 우리는 스스로 못 헤어나와요." - 시시한 영화 한 편 외에는 분노할 거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치틸로바가 두 여성 주인공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인터뷰 내용은 충격적이다. 주체성 없는 17세 젊은 아이들은 파괴의 쾌락 속에서 악의 있는 장난을 통해 악을 일상에 녹여놓았다고 말했다. 이 영화가 도덕극이라니. 그렇다면 이렇게나 매혹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영화를 보며 이 두 주인공에게 완전히 매료되었고, 정신없이 데이지에 빠져들었다.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는 수미상관으로 전쟁으로 인한 파괴, 폭발의 몽타주가 따라붙는다.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이들의 악의 섞인 장난과 접시나 음식의 파괴와 전쟁의 파괴를 비교하는 일은 폭력적이다. 그러나 전쟁과 비교해 이들의 악행은 너무나도 장난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폭력은 어디에나 있고, 그 경중을 따질 수 없겠으나. 영화에서 먹는 행위는 특별하게 다뤄진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쑤셔 넣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더 신나는 일 쪽으로,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오늘만 사는 인간들처럼, 혹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들처럼. 이들이 가위를 들고, 모든 음식을 쪼개 먹는 장면은 압권이다. 남근을 상징하는 듯한 바나나와 소시지를 잘라 먹고, 잡지에 실린 스테이크 사진을 오려 먹고, 고기를 더 달라고 말하니 발가락 쪽으로 가위를 가져간다. 이들은 음식을 자르다못해 자신들의 몸을 분절한다. 목과 팔과 다리가 잘려 신문의 일부가 된다. 대상화에 대한 강력한 거절의사로 읽혔다. 우유로 샤워를 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유 안에 계란과 잡지의 일부를 잘라넣고, 그 안에 자신들의 몸을 집어넣는다. 이들은 샤워를 하는 게 아니라 음식의 일부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