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erkalo

青春残酷物語
平均 3.5
2024年02月08日に見ました。
<미친 과실>(1956)이 패전 이후 일본 청년층의 대상 없는 분노를 포착했다면, <청춘 잔혹 이야기>는 그 실상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본다. 영화가 세대론을 말하고 있음은 기요시-마코토의 서사에 유키의 이야기가 종종 침입하며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분명히 드러난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오시마의 나이는 20대에 불과했다. 때문에 감독이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를 들어 오즈 같은) 기성세대 감독들과 사뭇 다르다. 감독은 청춘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며, 변한 것은 시대일 뿐이라 주장한다. 그렇다고 감독이 청년층의 도를 넘는 비행(非行)에 핑계를 댄다거나 변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일삼는 만행을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이입을 막는다. 다만 그들의 무력함을 이해하려 들 뿐이다. 특히 실패한 학생 운동에 주목하며 (한국의 4.19 혁명도 언급되는데, 이는 감독이 한국에 관심이 많았음이 잘 알려진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꽤 인상적이다), 스스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패배감에 휩싸인 것이 청춘들이 엇나가게 된 계기로 본다. (그러한 점에서 누벨바그의 마지막 걸작이자 68혁명의 후폭풍을 담은 <엄마와 창녀>(1973)와도 맞닿아 있다.) 그 무기력함을 표출하는 영화의 연출엔 내공이 상당하다. 가령 낙태를 마친 마코토의 옆에서 기요시가 사과를 힘겹게 베어먹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며 길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영화에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자주 사용되는데, 가로가 긴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특성상 여백이 넓다는 점이 분위기 조성에 한몫을 한다.) 배경음악 없이 고요한 이 장면은 기요시가 친구와 질 낮은 대화를 할 동안 베토벤을 틀던 여유와 대비되며 처참한 패배의 기색을 역력히 내비친다. (이때 잔인하게도 마코토의 몸 위에 놓인 사과의 붉은색에 비해 무척이나 초라한 빛의 그녀의 입술엔 생기가 돌지 않는다.) 또한 후반부 출소 이후의 장면들에선 핸드헬드 카메라가 유독 심하게 흔들리는데, 이는 끝내 저항을 택할 그들이 맞이하게 될 비참한 최후를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기성세대와 청춘의 사이에 위치한 유키는 기요시와 마코토를 보며 자신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음을 회상한다. 그들을 보며 비관함과 동시에 동경심을 숨기지 않는 그녀는 그들에게 "우리처럼 되지 말아야 해."라 말한다. 유키는 세상에 순응해버리며 '철든 어른'이 된 청춘 이후의 세대를 대변한다. 그들은 방황하는 청춘들을 보며 혀를 차지만, 사실 그들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지 못했지만 아래 세대들은 같은 실패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야말로, 젊은이들을 향한 실망감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남몰래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청춘 역시 세상에 맞설 힘이 없다는 것을 영화는 잔혹한 결말을 통해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MZ 세대라는 용어는 밈이나 풍자를 넘어서 비하적인 표현, 혹은 그 너머의 무언가가 되었다. 이는 어른들의 기준에서 몰상식한, 혹은 개념 없는 태도를 보이는 젊은이들을 주로 일컬으며, 많은 이들은 점점 흔해지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그들이 너무 편하고 곱게만 자랐다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이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대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과거에 비해 드높은 현실의 장벽에 훨씬 일찍 부딪힌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쉽게 열정과 낭만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