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상맹

상맹

11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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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本 ・ 2024

平均 4.1

유발 하라리의 대문자로서의 역사는 그의 방대한 지식과 독창적인 그의 관점으로 언제나 흥미로운 상호주관적 현실 혹은 진실에 가까워 보이는 정보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같다. 인간의 역사를 상호주관적 현실을 만드는 이야기와 정보 네트워크라는 것으로 되돌리는 것. 그렇지만 또 정보의 확장이 진보는 아니라는 것. 정보처리 네트워크는 늘 진실보다는 질서를 위해 사용되었기에. 인쇄술의 발달이 마녀사냥을 증폭시킨 것처럼. 현재 알고리즘도 대뇌보단 말초신경을 더 자극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지 않나. 그렇기에 필요한 정정가능성이라는 원리. 특히 정보처리가 사람을 떠난 AI에게 집중된다면 생기는 정치적, 윤리적 딜레마까지 함께. 정정가능성의 철학은 아즈마 히로키도 근작에서 자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논지는 사피엔스처럼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향한 것이라서 전작들과는 다르게 백퍼센트 마음이 가지는 않았다. 사실 이미 AI와 미래에 대한 수많은 예측과 수많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은 현실도 많이 보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설득력있는 경고이자 제대로 함께 미래를 건설해나가자라는 절박한 호소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논지 외로도 재밌는 인사이트나 구절들이 많았다. 발전이 빠른 시대에 세계에서 보수정당들 아예 괴멸해버렸다는 이야기. 하긴 전통 가치를 지키자는 보수가 이제 어디있음. 그냥 포퓰리즘식이 되어버렸지. 헌법 지키자는 사람들이 헌법을 무시하는 이상한 보수가 또 여기 있지 않나. 제일 생각해보고 삶의 곱씹어야할 인사이트는 사람들은 수많은 정보와 이유들보다 하나의 이유와 이야기에 더 끌리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하라리도 이 부분에서 역사의 낙관이 가능해질 거라 보는 느낌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처하던 스스로도 반성이 많이 됐는데, 십자군도 사실 경제적 이유보다 성전이라는 이야기에 일어나지 않았나. 생각보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많이 좌우된다.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는 그람시의 말. 너무 많은 정보에 익사되는 이 시점에서는 비관할 이성이 문제가 아니라 낙관할 의지를 만들어 줄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다. 마르크스와 비판적 사고의 소진이라는 라투르의 말도 그래서 일리가 있는 것 같고. 맞아 사실 마음이 합의에 이르는 것은 그 수많은 이유들이 아닌데. 사람도 순전히 이유들때문에 사랑하진 않잖아. 비자발적 순간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더 매혹적이고 로맨틱하잖아. 역사의 미래가 있다면 수많은 이유들과 정보 다발로 구성된 자본과 권력투쟁의 세계를 바라보는 곳보다 하나의 멋들어진 이야기를 만들어 서로가 마음이 닿는 곳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