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도에이의 비디오 전용 유통망인 V시네마를 통해 제작되었지만, 주연 안도 사쿠라와 함께 호평을 받은 <백엔의 사랑>(백엔러브)의 타케 마사하루가 총연출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입니다. 계속 홍보에서 강조하듯, 실화 바탕입니다. 원제와 동명인 <전라감독>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무라니시 토오루에 대한 평전이 원작이더군요. 한국에는 인지도가 거의 없지만 무라니시 토오루는 이래저래 문제적인 인물입니다. 실제 정사 장면 삽입으로 논란이 된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이후 AV에서는 본격적으로 실제 정사를 넣은 감독이자,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으며 실제로 정사를 하는 연출을 시도한 감독이기도 하고, 결국 1990년대 이후 몰락했지만 AV로 번 돈을 바탕으로 사업을 크게 열던 사업가기도 하죠. 게다가 ‘일본 최초로 재학 중인 대학을 공개하며 AV에 출연’하고 ‘토크쇼나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최초의 AV 배우’이기도 한 쿠로키 카오리도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일부 상호를 바꾼 걸 빼면, 실제 인물을 최대한 가져왔습니다. 기존 영화 연출진이 제작에 참여하고, 애시당초 영화를 찍듯이 작품을 만든 것을 생각하면 공개되는 형식은 연속 드라마지만 실제 관객에게 제시되는 작품의 모습은 ‘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세트를 돌려 쓰는 등 저예산 촬영을 한 것이 눈에 보이지만, 연출 구성이나 배우의 연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쿠로키 카오리’ 역을 맡은 모리타 미사토는 이번이 본격 주연은 처음이던데, 결코 쉽지 않은 다층적인 욕망을 소유한 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냈습니다. 애시당초 타케 마사하루가 비디오 영화를 많이 찍었던 것을 생각하면, 제한된 비용과 로케이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연출자를 구한 듯 싶고요. 동시에 한국에서는 거의 안 알려진 1980년대 일본 성인 비디오의 태동을 알 수 있는 흥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소재 선정 이후부터입니다. 도입부에서는 무라니시의 온갖 문제적인 기행에 가까운 발언을 드러내며 마치 마틴 스코세이지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되려는듯 피카레스크인척 하지만, 그 이후에는 전형적인 ‘고생 끝의 성공신화’입니다. 본래 영어 교재 영업사원이었던 무라니시가 우연히 도색화보 사업에 뛰어들고, 다시 급성장하는 비디오레코더-플레이어 사업과 발맞춰 AV에 뛰어드는 모습은 흥미롭고 자극적으로 보여주지만 ‘맥락’이 없습니다. 그 안에서 감독은 (원작인 평전에도 같은 해석이 있는지는 모르나) 무라니시가 직장인일 시절 아내가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게 된 것에 대한 충격- 그리고 성욕을 대리충족하길 원하는 은밀한 욕망이라는 소재를 넣긴 하지만 그 모두는 ‘성공기’의 도구 이상을 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AV배우로 주목 받은 ‘쿠로키 카오리’에 대한 묘사도 약간은 <백엔의 사랑>이 호평받았듯, 청년-여성의 욕구를 드러내는 듯 싶지만 그 두께는 너무 얇습니다. 편모 집안에서, 기독교 가정에서 ‘본능적으로’ 성에 눈을 뜨고 은밀하게 계속 원해왔음을 말하는 표현 묘사만 있을 뿐, 그 욕망이 ‘AV’라는 소재와 만날 때 빚어지는 효과는 무척이나 나이브하게 드러납니다. 성욕을 공개적으로, 다시 사업적으로 활용하면서 쌓아 올린 ‘신화’를 말하지만 정작 그 신화의 다층적인 면모는 너무 쉽게 넘어갑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작품이 무라니시-쿠로키를 통해 드러내려는 ‘성혁명을 통한 개인의 성장’이라는 주제가 많이 빈약해집니다. 물론 68 혁명 전후나 1980년대 대중문화를 말할 때 ‘성인매체’를 제외할 수는 없습니다. <래리 플린트>나 <포레스트 검프>에도 등장하듯 플레이보이-펜트하우스-허슬러를 비롯한 성인 매체의 등장을 마냥 빼놓을 수 없고, 한국의 1980-1990년대를 말할 때 3S 정책으로 탄생한 에로 영화나 성인물 표현 규제 문제가 계속 나왔듯 말이죠.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다시 그 ‘성’을 기반으로 한 움직임의 반대편을 너무 뻔한 요소로만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경쟁하는 대형 업체의 ‘음흉한’ 사장이나, 그들과 유착한 ‘질나쁜’ 경찰, 또는 쿠로키의 어머니를 비롯한 ‘보수적이지만 뒤로는 할 건 다 하는’ 위선적 기득층이 전부죠. <래리 플린트>는 실제 주인공이 그랬듯 래리 플린트 자신이 저급하며 저열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소중하다는 방식으로 성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연결시켰지만,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에는 이런 연결고리 조차도 없습니다. 모든 시대적 상황, 하위문화의 흐름과 반작용이 모두 결국 무라니시 개인의 영광을 위한 길 이상을 넘지 못해요. 도발적인 듯 하지만, 그러다보니 뒤로 가면 갈수록 전형적이게 됩니다. 여성의 성적 욕망과 자유 해방을 말하는 부분도 무라니시의 이야기와 겹치는 것은 물론, 전설적인 AV 배우 탄생의 이야기로 연결되다 보니 참으로 얄팍합니다. 강렬해야 할 부분을 뻔한 이야기로, 논쟁을 만들 부분을 신화로 메꾼- 소재만 좋은 드라마가 되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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