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MavericK

MavericK

8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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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MMO ガンモ

映画 ・ 1997

平均 3.7

현실을 담아내야 하는 본분을 망각한 것 처럼 보이는 영화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영화는 일련의 홈비디오 영상에서 출발하여 토네이도 같이 감당할 수 없는 가혹한 현실을 일부 벼려내 간직하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세게 달려오는 토네이도의 벌어진 틈으로 흘러들어가 반영된 현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시네마를 위한 공간이 새롭게 구축된다. ‘오즈의 마법사’의 켄자스 소녀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동화 속 세상에 빨려 들어가듯 폭풍의 중심부로 멀리 날아간 관객들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엘리스가 되어 종종거리는 한 마리 토끼를 마주한다. 엘렌의 ‘농장노래’와 함께 우리는 자연스러운 이끌림으로 토끼 귀 소년을 바쁘게 뒤따라 가야한다. ‘구모’의 배경은 미국을 모방한 듯 보이는 이상한 나라다. 유사현실에 기대어 발생하는 이야기는 비록 카드 병정과 모자장수, 허수아비, 겁쟁이 사자는 없어도 다양한 소수자가 존재한다. 그들은 ‘프릭스’처럼 서커스 공연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의 삶을 위해 자신들이 당면한 현실을 살아갈 뿐 이다. 한적한 밤에 시작 된 영화는 텀러와 소녀의 미묘한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끝내 키스를 이뤄주지 않고 이질적인 편집으로 텀러와 솔로몬이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가는 쇼트로 넘어간다. 폭 넓은 구성으로 짜여 유난히 나래이션을 많이 사용하면서 텀러를 소개한다. 악마 같고 괴이한 성격의 소유자. 그는 능숙하게 검은 고양이를 총으로 겨눈다. 텀러는 솔로몬이 진정시키고 나서야 총을 거둔다. 일면 몸에 익은 행동들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며 자신들의 성장과 삶의 이유를 위해 몇 번이고 자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할당된 업무를 위한 파트너이며 공모자다. 그들은 왜 고통에 무뎌지게 된 것 일까? 곧이어 카메라는 다정한 세 자매를 보여준다. 평범한 사춘기 소녀들은 방에서 각자의 육체적 성숙을 찬양하며 정답게 놀고 있다. 이렇게 내러티브는 분절된 체 ‘엘리펀트’처럼 각각의 장소에 위치한 인물을 위주로 단편적인 상황의 집합에 초점을 둔다. 영화에 이어지는 쇼트마다 삽입된 비디오영상은 온갖 혐오스러운 범죄들로 가득하다. 아버지에게 괴롭힘을 받는 여자의 무미건조한 목소리, 세 친구가 대화하는 고양이 죽이기, 우울증에 시달린 자해 그리고 스킨헤드 형제들을 보여주며 자아의 성숙과정애서 타의에 의한 학대 혹은 자의에 의한 폭력들로 혐오의 두 가지 축을 구성하여 맞물려 돌아간다. 각각 다른 장소에 있는 그들에게 폭력은 일상적이고 친숙하며 일종의 놀이로 즐기며 또는 트라우마 자체로 남게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물들은 신체적으로 어른의 것과 가깝게 발달했지만 미처 벗겨내지 못한 정신적 미숙함이 돋보인다. 혹은 반대의 경우에서 발생하는 문제에도 집중한다. 텀러와 솔로몬은 흑인남자에게 고양이를 건넨 뒤 돈을 받고 산에서 본드를 흡입한다. 텀러는 반쯤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게이인 친형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낸다. 그는 말하면서 어떻게든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혀가 꼬이지 않고 분명하게 말한다. ‘남자친구가 있을 정도로 지금은 예뻐졌다’, ‘솔직하게 형을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등 이 같은 두서없는 고백을 늘어놓으며 어느 도시에 살고 있을 로이 오비슨의 ‘crying’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이를 그리워한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느닷없이 카메라는 다른 장소로 빠르게 넘어간다. 토끼소년이 등장하고 장난감 총을 휴대한 서부의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공터 시퀀스가 끝날 때 까지 토끼에게 쉼 없는 폭언과 조롱이 이어진다. 여기서 감독이 느꼈을 전형적인 서부영화에 관한 감정이 느껴진다. 인물 두 명을 어린이로 설정하며 대부분의 서부영화가 지닌 스테레오 타입인 사명감과 정의감의 딱딱한 측면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두 소년에게 있어서 악당이라 규정된 인물을 벌하는 것은 폭력이 아닌 응당한 처방이다. 영화는 그러한 감정을 끝까지 밀고나간다면 서부의 사나이는 결국 어린이와 같은 소년성과 유사하다 간주한다. 동화의 주인공이 되어야할 올곧은 마음을 지닌 두 소년에게 이해받지 못한 토끼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총격에 쓰려져 진흙탕에 죽은 듯 누워있다. 버림받은 토끼는 그 이후에 (단 하나만 예외로) 줄곧 원 쇼트로 등장한다. ‘구모’의 오프닝에서 토끼가 길가에 홀로 앉아있을 때 영화 ‘그녀’처럼 오직 청각적 이미지로 등장한 엘렌은 토끼가 공터에서 쓰러지고 난 다음 쇼트에 천천히 걸어오며 두 소녀 앞에 인사를 건내 실체화된 대상으로 카메라 앞에 다가온다. 화면이 전환될 때, 공간이 이동할 때, 쇼트의 배열이 굉장히 흥미롭다. 그러니까 엘렌은 토끼가 등장한 뒤에 바쁘게 움직이며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그녀는 토끼를 다른 공간에서 뒤쫓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각각의 인물들이 처한 타의적 폭력 혹은 정신적 미숙함에 기인한 자의적 폭력들을 한 축으로 진행된다. 영화를 시작한 인물인 엘렌이 그녀의 공모자이며 파트너(솔로몬과 텀러의 관계, 스킨헤드형제의 관계, 세 명의 소녀들의 관계. 엘렌과 토끼는 어떤 것에도 속하지 못했다.)인 토끼를 쫓는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동화에서 엘리스는 다른 장소에 있는 토끼를 추격함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엘렌은 다른 쇼트에 있는 토끼의 뒤를 따라간다. 미숙함에 의한 폭력 그리고 악의적인 폭력. 그것의 의도와 상관없이 ‘구모’속에 삽입된 영상 속 이름 없는 인물들은 모두 트라우마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비디오 속 인물들 어떤 폭력에 의해 타인과의 관계가 엇갈리게 되고 과거의 고통 속에서 현실을 살아간다. ‘구모’는 둘의 추격전을 통하여 엇나간 관계를 바로 잡으려 한다. 영화는 해결책을 위해 장소마다 곳곳에 산재한 폭력성을 깊이 이해하고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 대신 한 명 한 명의 인물이 처한 상황에 더 직관적 동의와 공감을 할 것을 요청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고양이를 잔혹하게 학대한다. 다수의 인물이 고양이를 학대하고 심지어 현실과 동화의 경계선에 놓인 토끼마저 후반부에 그것의 최후를 당당히 내보인다. ‘구모’에선 고양이를 은둔자나 모든 관계에서 실패한 대상으로 여긴다. 소외받은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속한 고양이에게 동질감을 느껴 혐오하며 엄청난 폭력을 가한다. 그들의 가학성이 고양이를 통해 발현되어 연속해서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하고자 고양이를 속죄양으로 삼아 다가올 앞날을 생각하고, 토끼가 고양이의 죽음을 관객에게 여실히 보여줬던 것처럼 각각의 인물들은 사회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거듭나길 원한다. ‘구모는 ‘타인에게 얄팍한 이해를 구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동의를 얻어내려 한다. 비스듬한 관계에 회복을 위해 영화는 추격에 대상을 역으로 돌려 현실과 동화의 전복을 시도한다. 중반부에 아코디언 선율이 흐르며 토끼는 솔로몬과 텀너가 내려갔던 내리막길을 뒤쫓는다. 이제는 역으로 동화가 현실의 뒤를 따라가게 된다. 또 엘렌이 원 쇼트로 등장하는 3개의 시퀀스에서 그녀가 눈썹을 면도하는 순간 오프닝의 상황이 역전되어 재현된다. 이제는 토끼의 멜로디언 소리가 그녀의 장소에 흐른다. 그렇게 둘은 끝에서 처음으로 되돌아온다. ‘사냥꾼의 밤’이 릴리안 기쉬의 나래이션으로 책장이 펼쳐지고 덮이며 종결되는 것처럼 동화와 현실이 맞닿는 곳에서 토네이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토네이도로 끝난다. 카메라는 수영장에서 토끼와 두 소녀를 포착한다. 한 프레임에서 토끼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조건 없이 인정해주는 두 명의 소녀와 동시에 나온다. 비로소 토끼는 관계의 회복이라는 진정한 성장의 순간에 당도했다. 초반부에 차 안에서 좌절된 키스는 비가 쏟아지는 수영장에서 이루어 진다. 이 순간은 로이 오비슨의 ‘crying’으로 너무도 아름답게 정화된다. 동화와 현실을 결정짓고 관계를 회복하거나 끊어버리는 주체는 실로 인간임으로 엘렌이 침대에서 행한 기도는 신에게 전달되지 않고 “지금 전화해 그거 불량동전이야”라는 농담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는 그렇게 빨간 구두를 신지 않은 소녀를 내세워 ‘오즈의 마법사’의 형식을 빌려와 구조를 만들고 마지막에 로이 오비슨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 ‘구모’처럼 데이빗 린치의 ‘블루 벨벳’도 로이 오비슨의 노래로 정화되고 ‘광란의 사랑’에서 ‘오즈의 마법사’가 연상되는 것은 재미있는 우연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