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경

Kim Min-young of the Report Card (英題)
平均 3.6
애들 이름도 헷갈리는 초반부에 누군가 수능을 치러 갔는데 옆줄에 웬 할머니가 앉아있다. 거기서부터 나는 이 영화가 좀 좋았다. 수능에 큰 관심 없는 우리 주인공의 수험장에 굳이 그 아리송한 세월의 존재를 앉혀두는 게 이 영화다. 앞자리엔 시계를 안 챙겨와서 우는 남자애가 있고, 또 시계를 슬쩍 줬더니 나중엔 시험을 망쳤는지 울고. 그런 존재들에게 남들보다 2초 더 눈길을 주는 게 우리의 정희다. '성적표의 김민영'이 등장하기 전까지 나는 김민영이 좀 끔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내가 절대 친구로 지낼 수 없는 싸가지 바가지인 것도, 세상을 협소하게 보는 그 앳된 시선도, 정희에게 다정하지 못한 모습에도, 한숨이 나왔다. 민영이가 너무 별로인 인간이라서 영화마저 별로였다. 그러다가 정희는, 그리고 우리는 김민영의 일기장을 들춰보게 된다. 마침내. 영화가 불꽃놀이를 벌이는 지점이다. 일기장 이후론 거의 모든 장면에서 속으로 '미쳤네..'라고 중얼거렸다. 대망의 오디션 영상을 보고 나서는 '그래 민영아 네가 교수님 집 앞에 찾아가서 드러눕든 어떡하든 내가 응원한다..'의 마음이 되어버렸다. 춤추고 노래 부르는 민영을 보는 정희의 눈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춤과 노래에 몹시도 재능이 없지만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몰입한 민영을 봐주는 정희의 얼굴에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무너졌다. 정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현실도 생각하라던 민영의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이 조금 아렸을까. 그저 팔다리를 꿈틀대는 그 인간이 한없이 사랑스러웠을까. 민영이 열심인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깜박이지 않는 정희. 그 미친 장면 이후로는 그냥 이 영화가 온통 미쳐보이더라. 정희가 불가해한 균열을 겪고 집에 오니 엄마가 친구들이랑 태평하게 과일을 먹는 그 한낮의 거실도, 방에 들어가서 김밥을 먹는 정희도, 내 심장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우정 그게 뭔지 알지, 하면서 영화를 보다가 어쩌면 내가 다 알지 못하는 거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다 모르는 이유는 아직 내가 다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아직 나는 우연히 친구의 일기장을 들춰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런 생각까지 가도록 해주는 영화다. 멀어진 이들과 끝내 연결시켜줄 무적의 일기장이 어딘가에 있진 않을까. 싶게 하는 영화. 얼마 전 친구의 결혼식 축사를 읽다가 눈물이 왈칵 차올랐는데, 그전까지는 사실 결혼 축사하면서 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3478면체인 나의 친구를 직장에서만, 학교에서만, 혹은 명절 때만 봤을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줄 유일한 기회라서 눈물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처럼 조리있고 유창하게 말해줄 사람이 없을텐데, 그리고 이건 너무나도 중요한 이야기인데. 거의 무슨 결백을 주장하는 사형수처럼 간곡해진 마음으로 편지를 읽었고, 눈물 콧물 때문에 발음이 망하는 것 같아 속상해져서 더 눈물이 났다.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고객센터에 전화했더니 내가 기다리는 전화 상담원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멘트가 나오더라. 나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말도 효과적이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라는 걸 상기시켜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건 너무 당연해서 별 감흥이 없는데, 누군가의 민영이고 정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급격히 누그러진다.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제일 못난 모습으로 짜증을 내다가 서운하다는 말을 듣고선 보드게임을 같이 해주고, 대학교에는 '진실된'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사람이 왜 서울에 살아야 하는지를 설파하고, 비밀스런 열등감을 일기장에 끄적인 사람인 걸 알면 내 미움에도 방지턱이 생길테니. "그때 네가 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말은 사실 '그로 인해 나는 너의 아군이 되었고, 너의 장점을 단점의 오백 배 정도로 쳐주게 되었다,'는 뜻이다. 앞으로 네가 얼마나 내 앞에서 바닥을 치든, 내가 널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한 이상 웬만하면 다 용서할 거라는 뜻이다. 웬만하지 않은 것도 웬만하게 봐줄 거라는 뜻이다. *테니스장 사장님 연기 개못해서 감독이 무슨 옆집 아저씨 급하게 데려온건가 싶었는데 또 그 "뒤 좀 돌아봐주겠니. 얼굴 보곤 말 못 하겠어서." 라는 대사가 발연기랑 묘하게 잘 어울림. 그 장면이 총체적으로 뻘하게 웃겨서 그런 듯.. ㅠ 아무튼 이것저것 좀 아쉬운 만듦새 때문에 이 영화가 허접하다고 느낄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 안 허접함. 허접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쓰이는 말임. 와중에 PAUL 삼(=사)행시 개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