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정환

정환

2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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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タンタンゴ

映画 ・ 1994

平均 4.3

술과 춤에 취해 잊고 싶었던 삶의 황폐한 풍경을 맨정신으로 마주하라는 진중하고 지독한 영화. 이 영화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비난이나 위선적인 희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오래도록 집요하게도 담아내는 것이고, 세상 속에서 희망을 찾거나 다시 염세로 빠지는 것은 7시간의 경험 이후 관객 본인에게 달린 몫이다. . 7시간의 영화를 본 경험을 몇 문단으로 서술하기도 참 버겁다. 신을 망각한 인간과 거짓 메시아의 이야기, 공산주의 붕괴의 은유에 관한 이야기, 수동적이고 무책임한 사람들의 이야기, 종말을 향해가는 세계를 기록하는 병든 관찰자와 그 세계를 온전히 배회하는 소녀의 이야기. 기어이 그 암울한 세계로 초대하곤 우리에게 바깥을 볼 겨를조차 주지 못하게, 판자로 창문을 못까지 박아버린 지독한 영화다. “(여태껏) 안개를 본 적 없어?” 이 영화는 영화의 힘을 믿는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길 기다리는 것과, 비로 젖은 진 땅, 휘몰아치는 비바람과 같은 우연적인 자연을 포착하고 단순히 카메라에 기록하는 것을 너머, 필름의 질감 위에 다시 한번 창조한다. 하아얀 안개마저 그윽한 연기 같은 흑백의 세계, 생생한 자연의 소리와 묵직하고 정직한 속도로 시간의 감각을 새겨 넣는 시계 소리. 탱고라는 춤의 운동, 거대한 원의 반복. 이것들로 영화 속 세계의 무거운 감각을 짙게 담아낸다. 희망도 의미도 남아있지 않은 마을을 벗어나길 원하는 마을 사람들이 애타게 찾고 기다리는 것은, 자신을 구원해 줄 메시아와 술이다. 그 누구도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가 불평하지만,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술을 마셔대는 사람들은 누군가 우리를 구해주기를 무책임하게 바라거나, 혹은 술에 힘을 빌려 비겁하게 눈앞의 현실을 지워버린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명제처럼, 이들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기껏 자유를 얻었음에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혹은, 자유롭게 살아봐야 도망칠 수 없는 이 세계를 체념했거나. 어쩌면, 이 모든 자유로운 발버둥이 죽음 앞에서 헛된 삶으로 해석했기 때문이겠다. 마침내 도착한 메시아조차 신을 망각해버린 이들 앞에 나타난 속물스러운 인간에 불과하다. 의사는 뒤늦게 소녀의 눈동자를 읽었지만, 술에 젖은 저주 받은 몸뚱어리는 빗물에 젖은 땅을 걷는 무게보다 더 무겁다. 의사는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꾸질 못한다. 그는 적어도 이 지옥 같은 세계를 온전하게 꿰뚫는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몸뚱어리로는 아무도 구하질 못한다. 가장 약한 사람은 소외되어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어른들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의미 없는 탱고의 춤사위는 제법 강제적이다. 마치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술에 취해 춤을 추는 것 밖에는 없어 보일 정도다. 탱고는 혼자서는 절대 추지 못할 춤인데, 이 영화에서는 어떠한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에서도 잊지 말라는 듯, 이 영화에서의 탱고의 파트너는 사탄이다. 아무것도 구원하지 못하고, 신조차 믿지 않는 이 비관적인 영화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영화 속엔 초월적인 순간들이 존재한다. 부서진 종탑에서 종소리가 들려오거나, 시간이 멈춰지거나, 안개로 가려진 숲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처럼 말이다.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그것이 이들을 구원해주지는 않지만, 영화는 이것들을 그토록 지독하게 보여줬던 이 세계의 암울함과도 같이 끝내 포착했음이 중요하다. 영화는 종말이 다가오는 세계의 밑바닥과 잠시 신성함이 피어오르는 순간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이만큼을 썼어도, 이야기 다 못 다할 영화의 부분들이 마음에 밟힌다. 아직도 이것밖에 말을 하지 못하나 싶기도 하다. 가장 안타깝고 쓸쓸하면서 아름다웠던 장면들도 여전히 눈에 아른거리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영화를 본 나의 경탄뿐이기에, 막상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것도 하게 못하게끔 만들어 나를 수동적인 관객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무력하게 이끌리기만 했던 그 경험이 얼마나 내가 힘없는 사람이었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다행인 점은 영화의 역할은 딱 여기 까지라며 스스로 선을 긋고선 7시간의 경험 이후의 남은 삶은 나의 몫으로 돌려받았다는 점이었다. 이 세계는 그 무엇도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가 우울한 결말의 세상을 살아가는 무력한 존재임을 각인시키는 것은 아니다. 술과 춤에 취해 잊고 싶었던 삶의 풍경을 맨정신으로 마주하라는 영화의 용기이다. 오랜 시간 동안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취하지 않고서 바라보는 게 만드는 것. 이 영화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비난이나 위선적인 희망 없이 지독하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런 세상 속에서 희망을 찾거나 다시 염세로 빠지는 것은 관객 본인의 몫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