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량선

영혼의 집
平均 4.0
“칠레의 역사, 인간의 역사, 라틴 아메리카 문학과 마술적 사실주의의 역사가 바다를 건너 나에게 왔다.” ‘아옌데’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칠레의 그 아옌데?’라고 반문할 수 있는 사람에게 《영혼의 집》은 무척 흥미로운 책으로 읽히리라 생각한다. 시간적 배경은 1930년대부터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1973년 무렵까지. 공간적 배경은 (언급되지는 않으나) 칠레. 크게 보면 라틴 아메리카, 작게 보면 수도 산티아고와 (혼령들이 배회하는) 모퉁이 큰 집, 트루에바 가문의 땅인 트레스 마리아스. 물론 그 밖에도 다양한 장소가 배경이 된다. 이러한 시간적·공간적 배경의 특수성을 빼고 이 책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에서 강한 흡인력을 느꼈던 요소는 배경보다는 인물이었다. 델 바예 가문에서부터 트루에바 가문으로 이어지는, 4대에 걸친 기나긴 서사 속에서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비현실적이고 신화적이기까지 한 이 인물들은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강한 색채로 뇌리에 남는다.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기법을 언급한다면, 이 책을 설명하기 한결 쉬워진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칠레의,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인 특수성. 거기에 인간 역사의 사실적 보편성이 더해져 만들어진 놀라운 결과물. 내가 느낀 이 경이로움을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단어로 뭉개버려도 좋은 것일까.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좌우지간 아주 멋진 소설이다. 칠레의 근현대사를 만날 수 있었고, 인간을 만날 수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일렁거리는 대한민국 역사의 그림자 또한 볼 수 있었다…고 말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니겠지. 그렇다. 《영혼의 집》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소설인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넘어 나에게 온 것이다. 그렇기에 내 감상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혼의 집》이 바다를 건너 나에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