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태준

타타르인의 사막
平均 4.1
2025年11月10日に見ました。
요새에서 오지 않는 적, ‘타타르인’을 기다리는 장교 ‘조반니 드로고’의 이야기. 군입대 전에 읽으려다 실패해 훈련소에까지 가져갔지만, 거기서도 읽다 접었던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최근에 재개봉한 동명의 영화 <타타르인의 사막>(1976)이랑 비교해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시간이 부족해 소설 중반부까지만 읽고 영화를 보긴 했지만. 이제는 이런 외부 동기가 없으면 책을 속도 내서 읽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그때는 친절한 문장들과 다르게 산에 대한 배경묘사가 어려워서 쭉 읽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그래도 술술 읽혔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조반니 드로고 중위가 도시에서 말을 타고 첫 발령지인 바스티아니 요새(국경 수비대)로 가는 소설 초반 부분에서는 카프카의 <성> 같은 부조리한 느낌이 들었었는데(작가가 카프카를 좋아했다고 한다) 뒤로 가면서는 사막과 안개, 산과 골짜기가 조성하는 환상적인 분위기 아래, 인생과 인생에 관여하는 시간의 부조리로 다가오면서 이 이야기가 하나의 우화, 알레고리였구나 생각하게 됐다. 성과 이 작품 둘 다 공적 공간에서 사적 인간이 겪는 부조리를 다루고 있으나 그 기울어짐의 정도나 성격이 무척이나 다르다(성은 성 근처에 가지도 못하지만 여기는 요새에 진입하긴 하니까, 너무 오래 있게 돼서 문제지). 막연한 부조리에는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다보니 인물의 흔들리는 심리를 따라 독자도 흔들리고 혼란을 겪지만(그게 카프카의 묘미), 이 소설의 부조리는 한정된 시간, 어떤 것에 매어사는 인간이다보니 더욱 확실한 상징성을 띠어 가깝게 느껴진다. 소설의 메시지가 강해 인생 조언, 교훈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술술 읽히면서 생각할 거리도 준다. 다른 장교로부터 여기는 지원자만 오는 곳이라는 얘길 듣고, 또 이곳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가려했던 조반니는 바깥의 사막 풍경에 매료, 잠식되면서 서서히 그 의지를 잃는다. 그가 갖고 있던 반항적 기질이 요새에 복무하는 모두가 갖고 있는 순응적 기질에 자연스레 동화된 셈이다. 요새 속 장교들과 친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순응적 기질은 하나의 희망에 끈질기게 매달려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 바로 언젠가 저 북쪽 사막에서부터 적이 몰려올 거라는 희망이다. 삶에 단 한 번 있을 영광스러운 순간을 예비하기 위해 이토록 고립된 요새에 이들은 오래오래 머무는 것이다. 조반니도 그런 순간을 기다리게 되면서 요새에서 잠을 자는데, 그때 작가가 개입해서 여러 환상적인 우화를 곁들어 지금의 조반니(아무것도 모르는 조반니)를 바라보게 한다. 아직 젊은 나이라지만, 시간이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하지만, 운명은 심술궂은 장난을 쳐서 어느 순간 그를 결국 저 지평선 끝으로 몰아세울 거란 걸 암시한다. 북쪽에서 갑자기 나타난 말 한 마리 때문에 요새 병사가 죽고, 그 후에도 북쪽에서 병사들이 나타나는 이례적인 사건이 생기면서 부대는 동요하는데, 그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을 사령관 ‘필리모레’ 대령은 이상하게도 전투 준비를 명하지 않고 뜸을 들일 뿐이다. 여기서 대령의 심리가 묘사되는데, 그의 입장에서 지금 일은 뭔가 말도 안 되는, 실수에 가까운 일로 여겨진다. 그 지점부터 이야기에 미묘한 기울기가 생긴다. 삶의 어느 순간부턴 동터올 희망이 아니라 희망이 드리운 그림자에 숨어 사는 게 더욱 나으리라는 체념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 그건 대령만 알고 있던 삶의 부조리였다. 그럼에도 희망에 의기양양해진 장교들이 명령을 내려달라 그를 몰아세우던 순간, 참모본부의 전령이 도착해 저들은 국경선을 조사하러 온 것일 뿐이며, 우리도 이에 맞서 국경선을 새로이 정비해야 한다는 명령을 하달하며 위기를 모면한다(영화에서도 이 장면에서 긴장감이 압권인데, 대령의 직접적인 심리가 드러나진 않는다. 심상치 않아 하는 대령의 눈빛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 후에 국경선 일로 일개 소대를 데리고 험준한 절벽과 추위가 지배하는 북쪽 근처로 보내진 ‘몬티’ 소령이 도시로 가게 된 장교 친구를 따라 요새에서 나갈 수 있었음에도 남은 ‘안구스티나’ 중위를 몰아세우다(그만이 등산화가 아니라 군화를 신었기 때문에 소령의 눈엣가시가 되는 것 같은데 너무하다 생각한다) 죽는 일이 발생한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다른 인물들로 아주 짧게 보여주고 넘길 뿐이지만(그래서 아쉽다) 소설에서는 길게 할애하며 그토록 병약하던 안구스티나가 여기 남았던 이유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가 꿈꾸던 영광은 적과 싸운다는 희망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절망에서 연원한다는 걸. 그는 그토록 자길 몰아세우던 몬티 소령의 말에 화를 내지도 굴복하지 않았고, 북쪽 병사들이 자신들을 경계하게끔 추위 속에 고고하게 선두에 머물다 영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 자리에 없었던 드로고는 그 후 휴가를 얻어 도시로 돌아가지만(영화에서는 안구스티나-가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중위의 시신을 가족들에게 인계하는 겸 도시로 가게 된다), 도시가 자기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아프게 깨달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새 요새 속 삶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물론 염원하던 볼일을 본다. 장관에게 찾아가 자신이 사 년 간 요새에 머무르면 들어주기로 상관들과 합의한 약속을 상기시키며 다른 곳으로 발령해줄 것을 요청한다. 안그래도 요새 인원이 쓸데없이 많아 대거 감축할 계획이긴 하지만 그 순서에 드로고가 없다고 대차게 거절당한다(영화에선 요새 속 군의관이 써준 진단서가 그 증거로 쓰이는데 너무 오래됐다며 거절당한다. 실은 영화에선 드로고의 부임 초기에 장관이 요새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드로고는 분위기에 휩쓸려 장관에게 진단서를 전달하지 못했고 그냥 여기서 지내보기로 다짐한다). 드로고는 요새 속 모두가 그토록 희망에 매여 살면서도 속으로 떠날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새로 돌아가게 된다. 희망의 전모가 밝혀져 요새 분위기는 말이 아니게 된다. 처음 요새로 갈 때 만났던 오르티츠 대위는 어느새 소령 계급으로 이곳의 사령관이 된다. 이제 적이 올 거란 희망을 가지는 건 ‘시메오니’ 중위와 그의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북쪽의 이상한 낌새를 포착한 드로고 둘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요새를 동요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징계를 가할 거라는 경고문이 붙은 뒤로 시메오니 중위는 자신의 논리가 농담이었다며 전부 부정하게 된다. 모두가 희망에 들뜨면서 속으로 냉혹한 현실에서 도망치기를 바랐던 초반과 달리 이제는 모두가 냉혹한 현실에서 끝없이 기다릴 뿐이며, 희망을 품는 이는 드로고 뿐이다. 물론 사십에 접어들며 드로고는 저마다 성취를 이룬 채 이제 삶에서 안정을 취하게 된 도시 친구들과 달리 자신은 어떠한 성취도 없이 이곳에 머물 운명임을 차차 체감한다. 그러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시메오니가 사령관이 되고 드로고가 부사령관이 된 어느 날 정말로 적이 찾아온다. 그러나 오십의 드로고는 병들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신의 방이 지원군들의 숙소로 쓰여야 한다는 시메오니의 명령에 따라 요새에서 쫓겨난다. 그토록 기다렸던, 누구도 희망하지 않았던 희망이 찾아온 순간에 거기로부터 내쫓기는 아이러니. 영화는 요새라는 시공간에 드리운 부조리가 드로고라는 한 인물의 삶으로 변주, 확장되며 아주 부조리하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소설은 한 파트가 더 있다. 마차를 타고 도시로 돌아가다 여관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 드로고가 저녁놀에 그토록 자신이 기다리던 정체가 ‘죽음’임을 깨닫고 공포와 두려움을 떨구고 용맹하게 직면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가 달빛 아래서 짓는 미소는 삶의 다른 차원을 겪은 인간만이 내보일 수 있는 표정 같이 느껴진다. 소설의 결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가치 같기도 하다. 결국 이 이야기는 불분명한 희망에 목메여 지금을 만끽하지 않고 허비하는 것과 절망과 체념에 허덕이며 안위만을 중요시하게 되는 것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죽음을 앞두게 된다는 잔인하고 부조리한 삶의 굴레를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드로고는 자신에게 놓인 죽음이란 마지막 운명과 정정당당하게 겨뤄보려고 한다. 누가 그럴 수 있을까. 노쇠해지고 혼자라는 고독 상태에서 누가 이렇게 용감해질 수 있을까. 이 마지막 파트에서 드로고를 통해 빛을 발하는 인간다움이 나에겐 굉장히 근사하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소설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처럼 정확한 파트 분배와 호흡,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 느낌에 속도감이 더해져서 좋은 문장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듯한 느낌도 있지만 그조차도 소설 속 빨라지는 시간과 어우러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예상과는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 긍정으로 비트는 결말이었지만, 그래서 다른 부조리계 소설보다 독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소설과 비교하면 순서가 다른 장면이 몇몇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원작에 부합하게 잘 만들어졌다. 가장 다른 점은 내면이 크게 드러나지 않으며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가 부재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좀 더 카프카의 <성> 느낌이 난다(그래서 영화만의 재미도 있다). 놀라운 건 이걸 그 당시에 영화화 했다는 사실인 것 같다. 소설 속 요새와 비슷한 장소를 찾아냈다는 것(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란의 요새도시 아르게 밤(Arg-e Bam)인데, 2003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소설 속 설정에 대한 고증이 매우 잘 되어 있다는 것(옷 차림이나 제식 같은 것. 산 정상 보루가 영화에서는 전초기지로 바뀌었지만), 그리고 배우들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도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