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정환

정환

4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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牯嶺街少年殺人事件

映画 ・ 1991

平均 4.1

“이미 흘러간 진실의 자리로 향했던 발걸음을 멈추어 카메라 하나를 내려놓는 영화는 그저 이러한 일들이 있었음을, 그들과 그것들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을 때, 이를 알면서도 기어이 모든 것을 담아내려 했던 가장 한계에 가까이 도달한 영화.” 개인의 성장과 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혼란들 사이에서 대담하게 포착했던 순간조차도 온전하지 못한 시간의 파편들에 불과하듯, 제아무리 담아봐야 그 안의 개인의 시선들을 대변하지 못한 채 개입한 또 다른 렌즈에 불과하듯, 사실을 옮기려는 노력들조차 결코 현실일 수 없는 한낱 영화에 불과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영화였다. 겨우 237분의 영화를 보며 느낀 것들을 글로도 온전히 옮길 수 없던 내가, 영화가 결코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을 때, 이를 알면서도 기어이 모든 것을 담아내려 했던 가장 한계에 가까이 도달한 영화 앞에서 할 수 있던 건, 몇 문단의 글 따위로 감상에 가까이 닿도록 최대한 온전하게 옮기는 대신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나의 하루에 이 시간을 다시 한 번 더 흘러가게끔 만드는 것 밖에 없었다. 영화는 혼란스러운 시대의 풍경과 소년 개인이 지닌 어린 날의 비극 모두를 옮기려는 무모한 용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변하지 않을 세계를 향해 무언가를 바꿔보겠다는 대단한 시도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어두운 시대를 조명하던 소년의 손전등을 이리저리 따라가던 영화는 현실 그 자체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가 지나간 역사나, 왜곡된 기억들을 담아낸다는 것은 뒤늦게서야 바라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대를 지나쳐 온 우리가 이제는 무언가를 다 알고 있다는 선언도 아니다. 이미 흘러간 진실의 자리로 향했던 발걸음을 멈추어 카메라 하나를 내려놓는 그들은 가짜들로 다시 한번 진짜를 만들어보려는 게 아니라 그저 이러한 일들이 있었음을, 그들과 그것들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다. 바뀌지 않을 세상이기에, 바꾸려고 하는 대신 옮기기 시작한다. 온전히 담을 수도 없기에, 옮기는 대신 일부를 선택할 뿐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카메라의 몫이었다. “그곳에 있었던 사실”이라는 문장을 “사실이 그곳에 있었다고”바꾸는 것이 영화의 역할이다. 그래, 우린 거기에 없었으나 영화는 거기에 있었다. 영화는 비록 진짜를 담아내려 한 가짜에 불과하지만, 그때의 역사에 함께하지 못했던 우리를 대신하여, 영화는 역사에 함께한다. 영화는 역사와 함께했고, 그렇게 가짜로서의 영화가 진짜라는 현실 속 세상의 일부가 되는 법을 터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