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risCHUN

奇跡の丘
平均 3.7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가장 고민했던 두 남자. 예수그리스도와 가룟유다. 어느 들판의 추수하는 선량한 청년의 모습을 보고 예수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마지막으로 가룟유다의 얼굴은 그리지 못하고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사형장에서 마주한 어둡고 흉측한 사형수의 얼굴. 다빈치는 순간 저 얼굴이야말고 유다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자리를 뜨려하였다. 순간 . "선생님. 저를 기억 못하십니까? 7년전 추수하는 들판에서 제 얼굴을 그리셨잖아요..." . 7년만에 바껴버린 그 얼굴 . 이 영화에 대한 근사한 분석과 같지 않은 수사학 따위는 제쳐두고, 보는 내내 이 유명한 일화가 생각났던건 우리가 흔히 아는 20세기 영화 역사상 가장 문제적인 남자로 손꼽는 파졸리니의 얼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 [마태복음]은 파졸리니의 대표작으로 아는 [살로, 소돔의 120일] 12년 전 초창기 작품이다. 한마디로 파졸리니가 영화감독보다는 시인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을 무렵,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마태복음]은 어떠한 기교나 해석도 없이 그냥 순수한 성경 그대로의 [마태복음]을 옮겨놓았다. 가장 놀란 지점이었다. [살로, 소돔]을 만든 감독이었기에 당연히 어떠한 기괴한 해석과 신성모독 쯤은 당연히 있으리라는 선입견과 기대감으로 마주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내가 만난 어떤 예수를 다룬 영화보다 순수했고, 성경그대로를 옮겨놓은 작품이었다. 이 시절 그는 시인의 감성을 그대로 지닌,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청년이였는지 모른다. . C. 루이스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시인이었다. 그러나 자라면서 자신이 시인이었던것을 잊어버린다] 라고 말했다. . [마태복음]을 만든 후 12년동안 과연 어떤일이 그에게 있었던걸까? 너무 감상적이라 욕해도 어쩔수 없다. 내가 [마태복음]을 보면서 느낀것은 실제로 그러했으니까... . 파졸리니는 [살로, 소돔의 120일]을 마치고 어느 해변가에서 소년에 의해 난도질 당한채 죽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죽어가면서 떠올렸을 장면은, 시인이었던 그가, 어쩌면 오로지 영화의 대한 열정과 순수한 마음만을 가지고 만들었던 [마태복음]의 한장면 아니었을까. . 파졸리니! 모두가 당신을 [살로, 소돔의 120일]로 돌팔매질 할 때, 나는 당신을 [마태복음]으로 기억하겠어요라는 말로, 어느 해변에서 쓸쓸하고도 처참하게 죽어갔던 그에게 꼭 전하고 싶단 생각으로 영화를 마쳤다. . 편히 쉬세요 파졸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