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young_Wonly

인생
平均 4.1
위화를 알고 있니 지난 2019년에 중국에서 소포가 왔었다. 그해 6월 생일을 맞았던 친구에게 그림 선물과 책, 다이어리 등을 보냈었는데, 고맙게도 그에 대한 답을 해준 것이다. 내가 받은 선물들 중 위화의 책이 있었다. 원제 第七天, 번역 제목 제 7일. 한국에서는 중국에 대한 뚜렷한 '반중정서'가 감지된다. 사드 문제부터 조짐이 보이던 중국을 향한 반감은 3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며 지금은 반일정서보다 더할 만큼 커졌다. 물론 이러한 반중정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단순한 혐오 감정이라고 치부할지 몰라도,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닌 듯 보인다. 반중정서는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중국의 폭력적인 민족주의, 독재 정치, 타 국가와 소수민족에게 쏟아내는 무례함, 시진핑 국가주석의 무리한 행보 등이 있다. 물론 혐오를 위한 혐오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을 미워하면서도 중국이 왜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지, 어째서 대만의 독립 문제에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시진핑이 전세계의 경계와 반발을 무시하며 독단을 밀어 붙이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알려고 하기엔 너무 복잡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친구들과 뒷풀이를 가지며, 사회주의 국가니까 입 한번 잘못 놀리면 처형 당하는 게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날리기도 했으니까. 한편으론 반중정서가 지나치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막상 중국에 가보자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도 중국을 둘러싼 국제적인 흐름은 나 같은 개인 1, 유학생 1과는 무관할거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에 나가면 결국 의지할 건 같은 동족, 민족 뿐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다. 유학 경험이 있거나, 타지 생활을 겪어본 분들이라면 아마 이해하실테다.(물론 그런 믿음을 역이용해 등처먹으려는 사기꾼도 있다.) 게다가 한국의 인지도 또한 80년대, 90년대보다는 훨씬 나아져 자주 들어보던 외국 대도시의 경우 다니는데 딱히 불편함이 없을 정도가 됐다. 특히나 중국은 한국과 역사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정치-경제-문화-철학까지 너무나 깊게 엮여있어 당연히 우리와 같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그런 이유들로 중국 학생들 중에도 K-POP을 즐겨 듣는다며 먼저 다가오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한국 유학생과 중국 재학생 사이에서는 주로 어색함과 긴장이 감돈다. 사상과 이념의 충돌, 오해로 비롯된 불신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양국 언론과 미디어 매체에는 서로에 대한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있다. 한국도 그렇지만, 중국 역시 가짜뉴스를 만들어낸 원작자를 추적해 법적 책임을 묻는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은 사기 행위지만, 중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그저 忽悠(홀유)라고 일컬을 뿐이다. 홀유를 정확히 번역해낼만한 단어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듯 하다. 사기를 뜻하기도 하고, 화제성, 혹은 뭔가를 띄워준다는 의미도 있다. 진지하게 쓰이는 건 아니고, 유행어 같은 오락적 단어인 셈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다 쓰지 못하고, 쓰더라도 나눠 써야할 듯 하다. 대략 줄이자면 이렇다. 유학생이건 본국 학생이건 모두 공부하러 온 입장이고, 서로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 뿐이다. 그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어렵다. 그건 바로 경청이고 인내이기 때문이다. 국가 대 국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면 된다.(물론 그렇게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건 같은 한국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선물을 주고 받은 우리 둘은 외동이라는 공통점을 시작으로, 중국과 한국이 인구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안까지 대화주제가 발전해갔다. 1가구 1아이 산아제한 정책, 일명 소황제의 삶, 그리고 노령화.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뒤에야 관련 문제로 인한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면, 중국은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안정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이와 같은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영원하며 위대한 국가 주석으로 남고 싶은 시진핑은 어찌 보면 최악의 세대를 떠안게 된 것이다. 그가 죽을 때까지 군림하며 일생을 다 바쳐도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진핑이 결심한 건 맑은 공기(진실) 대신 뿌연 스모그(환각)를 통한 전국 통제였다.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다. 담이 크면 배불러 죽고, 담이 작으면 배고파 죽는다. 국외 문제에 유연함 대신 강직함을 보여 마치 전 세계가 중국의 적처럼 보이게끔 유도함과 동시에, 하나의 중국을 히스테릭적으로 좇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많이 줄이려다보니 아주 정확한 내용까진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려는 건 이거다. 이런 문제까지 논할 정도라면, 설령 우리나라에서 '짱깨'라고 매도당하는 중국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그 친구는 내게 위화를 알고 있냐고 물었다. 의외로 위화 작가의 책은 중국 내에서 보기 어렵다. 중국 최대 규모 쇼핑사이트 타오바오에서도 찾기 힘들다. 아마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왜 그런지 아실 듯 하다. 친구의 물음에 <허삼관 매혈기> 이야기를 해줬다. 한국에서는 영화로 각색되어 나왔었고, 나름 유명한 중국 작가라고 굉장히 애쓰면서 설명했었다. 친구는 내 어설픈 중국어를 모두 들어준 뒤 자신이 위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읊어줬다. 위화는 자국에서 발간한 문학 잡지를 읽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문학 잡지라고 하더라도 그 잡지에 실린 수백편의 작품 가운데, 50년 100년 뒤에도 읽힐 작품은 얼마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세계 문화 유산이라 할 만한 작품을 읽는다. 위화의 글솜씨라면 국내 문예지에만 글을 싣고, 평생 국가가 관리하는 출판사에 묶여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모조리 탕진해 돈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유가 곧 문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위화는 중국을 위한 글을 쓰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며,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건 없을 거라고 그의 책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고백한다. 어떻게 해서 작가가 되었냐는 질문에 위화는 '글쓰기'만을 언급할 뿐이다. 그 친구는 '중국인 작가가 아닌 글 쓰는 사람' 위화가 좋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친구의 국적은 중국이었고 나의 국적은 한국이었지만, 둘 모두 한국의, 중국의 무엇보다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들 각자의 삶의 양상과 결은 다르다. 삶의 의미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거나 특정 삶의 태도가 옳다는 주장은 폭력일 수 있다는 내용이 <인생>에 담겨 있다. 직접 써야만,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있다. 한국에서의 반중정서, 중국에서의 유학생활이 그랬었고, 그리고 중국에서의 우정이 그랬다. <인생>의 원제는 人生이 아닌 活著(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