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진

Black Rabbit, White Rabbit (英題)
영화 속 반복되는 끝없는 일상, 데자뷔같은 자유가 현실의 방아쇠를 당기기를 바란다. 부국제 상영 후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프로듀서가 관객에게 물었다. “영화를 보고 당신이 웃기도 울기도 하는 것을 봤어요.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요. 왜 우셨나요?” 관객이 대답했다. “어려운 말인데… 초반에 나오는 대화를 보고 있었어요. 그게 제 내면에 있는 것들과 부딪혀서 눈물이 났어요.” 내면이 현실과 부딪힐 때는 어딘가 부서진다. 영화는 충분히 논의되어야할 부서짐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현실에 방아쇠를 당긴다. - 안톤체호프의 반서사적 이야기는 끝없는 일상, 원인과 결과 없는 지지부진한 흐름으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체호프식 서사에서 주제와 서사(결말)에 관여하지 않는 요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1장에서 총을 소개했다면 2장이나 3장에서는 반드시 총을 쏴야 한다.“ 큰 흐름 속에서 우리는 보통 갑작스러운 이벤트로 세계의 균열을 알게된다. 일상의 사소함, 반복됨은 원인과 결과를 헷갈리게 하고, 수많은 충돌을 무심히 넘기게 한다. 하지만 내면이 현실과 부딪히는 순간들은 어느샌가 한 곳에 모여, 균열은 늘 에너지를 모으고 있다. 누군가의 ‘옷 입는 일’ 마저 규격화하는 이란사의 이벤트로 등장하고, 그 규격화를 거부하는 ‘의복 운동’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체호프의 총은 문학적으로 서술적 낭비를 극도로 경계하는 작가주의적 특징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역설적으로 복잡한 이란 현대사와 중동 페미니즘을 간략히 요약하는 한 문장일 것이다. 총이 소개되었으므로 이제는 발사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