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서른 즈음이라 그런가 주변에 다들 결혼해서 그런가 다시 연애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허겁지겁 집어든 책. 사실 좀 옛날 가치관의 사랑과 관계로 최근 관계들의 모든 것을 훈계하려는 면도 적확한 지점도 많다. 다시금 내 가치관이나 관계들을 되돌아 보게 한다. 특히 이제는 나이들어서 섹슈얼리티보다 서로서로 오래오래 신뢰와 믿음과 의미의 관계를 더 원해서 그런가. 정통 사회학과 인식론적 관점이라 조금 꼰대같기도 하지만. 요약하자면, 자본주의와 연애. 소비자본주의로 들어가면서 생기는 점. 첫 째, 짝들도 소비재처럼 바라봄. 과거와는 다르게 데이팅 앱들, 만남들이 소비재처럼 너무 쉽고 선택지가 많아짐. 선택지가 많아졌단 것은 내 선택에 불확실함이 생긴다는 것.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존재론적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둘 째, 섹슈얼리티와 자존감의 상품화. 섹슈얼리티는 이제 나의 매력의 척도이고 가치의 척도이다. 캐주얼한 섹스의 횟수나 관계의 횟수가 나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내 성적 매력과 몸은 자아와 마찬가지이다. 자존감은 그런 의미로 중요하다. 관계에서 나의 자존감이 상처받았다는 건 돌이킬 수 없는 헤어짐의 트리거가 된다. 자존감이 어떤 척도로 받아들여진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객관적 이유와는 달라지게 되었다. 셋 째, 출구와 도망침은 자유를 약속한다. 관계에서 그냥 도망치는 것만큼 자유로워지는 법은 없다. 자유라는 것이 무엇보다 강조되면서 계약적 관계가 더 중시되고 상호 신뢰는 불확실성으로 떨어진다. 쏘 쿨~ 쿨하고 차갑다. 넷 째, 취향의 절대화. 소비주의가 득세한 만큼 내 취향은 상대방 취향과 맞아야한다. 부르디외가 말한 취향의 정치학이 연애에도 들어와있다. 단순히 내 취향이 아니면 혹은 어긋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신뢰는 사르르바스스. 사실 이성이든 물건이든 소비하려면 자기의 욕망을 알아야하는 데 욕망도 알고리즘으로 자동화되는 사회에서는 어떨까.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긴 한데 해보면 시시하다. 가능성의 상태가 제일 좋다. 마치 백화점에서 아이쇼핑이 집에 옷장보다 좋은 것처럼. 욕망은 결핍과 금지로 생긴다. 향락과는 다르다. 부정도 지양되지 않을 때의 부정은 파괴만 남는다.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불확실성과 자유와 선택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터무니 없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뭐 그렇게 잘난 사람도 아니고, 오랜 관계의 지루함이 시장에 혼자 놓여졌을 때의 외로움보다 좋고, 반짝이는 섹슈얼리티의 즐거움보다 신뢰에서 나오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더 좋은 사람이라서 많은 걸 참조하게 된다. 뭐 사실 돈도 능력도 별로 없어서 소비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도 팩트이고 자기 합리화도 팩트긴하다. 역시 그래도 난 믿음이란 걸 믿고 믿음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관계에 대한 믿음. 관계를 위해서 때론 나도 희생할 수 있는 믿음 왜냐면 나도 받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과 각자의 자유도 관계 속에서 믿는 것. 그건 굳이 사회적 통념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런 관계 속에서는 어떤 일이 와도 싸우고 화해하고 하면서 손잡지 않을까. 연알못 1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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