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영화적 표현은 단순명료하면서도 잘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쿨레쇼프 이론의 기본 전제이다. 예를 들어 그는 화면 내의 동작 방향은 혼동스럽기보다 조직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쿨레쇼프로 하여금 시골 풍경보다 철교, 고층 빌딩, 기선, 비행기, 자동차 등의 기하학적이고 과학적인 풍경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쿨레쇼프에게 있어서 숏이란 하나의 '기호(sign)' 혹은 '철자'로서, 관객이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였다. (29p) 쿨레쇼프는 '가면의 얼굴(mask face)'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배우에게 어떤 가면을 씌우고 슬픈 자세를 취하게 한다면 그 가면도 슬픔을 나타낼 것이다. 반면 만일 배우가 행복한 자세를 취한다면 가면은 마치 행복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33p) 숏과 숏의 관계에 대해 쿨레쇼프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급작스러운 비약보다 부드러운 전환이었다. 따라서 '벽돌 쌓기'로 대표되는 그의 몽타주는 '보통 관객'이 이야기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쿨레쇼프의 몽타주는 할리우드의 '눈에 띄지 않는 편집'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것은 미국식 몽타주에서 출발한 이론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듯 쿨레쇼프의 몽타주 이론은 일차적으로 미국의 대중영화에 기초하고 있다. (44p)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생각하는 연극의 창조적 과정은 '위에서 아래로', 즉 초목적에서 세부 부분으로 구성해 가는 연역적 구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편 시스템은 전반적인 방법론에서도 연역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제안한 역의 첫 창조 과정은 역의 내적 논리를 세우는 것이며, 둘째는 그렇게 형성된 내적 경험을 외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는 '안에서 밖으로' 진행하는 연역적 방법으로서, '밖에서 안으로'의 방법을 취한 마이어홀드의 귀납적 연기 방법과는 대조된다. 마이어홀드의 연기 방법론은 반사학의 원리, 즉 "사람은 곰을 봤을 때 우선 달아나기 시작하면, 그리고나서 달음질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원리에 근거한다. 따라서 마이어홀드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달리 배우의 감정은 심리적 경험보다는 신체적 움직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귀납적 연기론을 주장하였다. (57~58p) 변증법을 '중단없는 발전'이나 '유기적인 관계'로 파악하려는 푸도프킨의 시각은 에이젠슈테인이 생각하는 변증법과는 대조된다. 에이젠슈테인은 변증법을 보다 역동적으로 이해해, 정(正)과 반(反)의 충돌에 의한 새로운 종합의 과정으로 생각하였다. 이것이 바로 에이젠슈테인이 주장하는 '충돌 몽타주(Montage of Collision)'의 기본 전제인 것이다. 에이젠슈테인은 푸도프킨의 몽타주 이론을 '연결 몽타주'라고 이름하며 자신의 '충돌 몽타주' 이론과 구별하려고 하였다. (60p) 체호프는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무대 위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만일 1막에 권총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마지막 막에 도달했을 때쯤 해서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 푸도프킨이 스크린에 담는 모든 것은 체호프의 권총과 같다. 단 푸도프킨은 권총에서 하나 이상의 숏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61p) 사실주의 몽타주는 궁극적으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부합한다. 푸도프킨은 영화가 중요한 세부사항들만 선택하고 그것들을 편집 과정에서 잘 배열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에너지 보존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잘 편집된 영화는] 관객이 그의 시야에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면하게 해준다. 이러한 영화는 주의가 산란해지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관객의 에너지를 절약하게 만들고, 따라서 아주 명료하고도 두드러진 효과를 얻는다.  ···(중략)··· 감독은 관객에게 보존된 에너지를 부여한다.··· 따라서 중요한 세부사항들로 조립된 현상은 스크린 상에서 그 표현력이 훨씬 강할 것이며, 이는 실제의 현상이 가질 수 없는 면이다. 스타니슬라프스키 '시스템'에서는 배우가 원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보존된 에너지를 극의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여야 했다. 푸도프킨의 이론에서 보존된 에너지를 사용하는 측은 관객이며, 그는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그 에너지를 소비한다. (66p) 영화배우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단절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이야기의 순서에 관계없이 단편적인 연기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스타니슬라프스키가 말하는 액션의 일관된 흐름을 실현하기 위해서 영화배우는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푸도프킨은 생각하였다. 첫째, 영화배우는 액션의 일관된 흐름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완성될 영화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둘째, 영화배우는 뛰어난 시각적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즉 영화배우는 앞으로 완성될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개별적인 연기를 쌓아 나가야 할 뿐 아니라, 이미 했던 연기를 기억하고 있음으로써 개별적인 액션들의 전후관계를 명료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배우는 액션의 일관된 흐름으로 조화로운 단일한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푸도프킨은 <어머니>를 만들 때 여주인공이 목적하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마지막 장면을 먼저 촬영하였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 죽은 아들의 시신 옆에서 슬퍼하던 여주인공은 이윽고 일어나 붉은 깃발을 들고 돌격해 오는 코자크 병사들을 향해 용감히 걷는다. 여주인공은 이러한 최종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고서 그녀가 하는 하나하나의 액션을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그 결과 여배우는 비록 단편적인 연기를 하였지만 액션을 논리적 연속성이 있게 구축해 조화로운 단일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86p) 마이어홀드는 그로테스크를 '천한 희극(low comedy)' 혹은 소극(笑劇)의 관점에서 논의하며, 1901년 독일에서 문학적인 카바레인 우버브레트(Überbrett)를 처음으로 만든 볼초겐(Ernst von Wolzogen)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로테스크(이태리어로 grottesca)'는 문학, 음악, 조형예술에서의 천한 희극 장르의 제목이다. 그로테스크는 보통 무언가 섬뜩하고 이상한 것을 내포하는 익살스러운 작품으로, 아무런 논리없이 극히 상충되는 요소들을 결합하며, 이때 그로테스크는 세부사항을 무시하고 그 자체의 독창성에 의존하며, 생의 환희와 삶의 변덕스럽고 조소적인 태도를 만족시킨다면 자료에 관계없이 뭐든지 빌려온다.(104p) 에이젠슈테인은 '불규칙성'이 예술의 매력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르느와르(Renoir)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모든 묘사의 아름다움은 다양성에 그 매력이 있다. 자연은··· 규칙성을 혐오한다.··· 규칙, 질서, 완벽함(그러나 항상 거짓된 완벽함)에 대한 욕구는 예술을 파괴한다.··· 예술의 취향을 보전시키는 유일한 가능성은 예술가와 대중에게 불규칙성의 중요성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불규칙성은 모든 예술의 기본이다.(132p) 에이젠슈테인은 그리스어의 '사상(idea)'이 내포하고 있는 세 가지 의미를 소개한다. 그것은 첫째, '외양(appearance)', 둘째, '설명 방법(method of exposition)'이나 '말의 형식 및 유형(form and type of speech)', 셋째 '사상'이다. 이러한 세 측면은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바로 '사회주의 영화'가 추구해야 할 원리라고 에이젠슈테인은 주장한다. 즉 사회주의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는 형식이나 방법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이젠슈테인은 "형식이 곧 이데올로기이다"라고 반복적으로 선언하며 형식주의의 색채를 지닌 자신의 몽타주 이론을 적극 옹호한다.(144~145p) 1939년에 쓴 글에서 에이젠슈테인은 파토스를 우선 수용자에 대한 효과의 측면에서 정의한다. 파토스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그 효과를 드러낸다. 관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을 때. 서 있다가 펄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때. 환호하거나 울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을 때. 기쁨에 넘쳐 눈이 빛날 때, 혹은 너무 기뻐 눈물이 쏟아질 때 ··· 간단히 말해서 관객을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했을 때. 파토스는 "관객의 감정을 전혀 다른 상태로 전이시키는 효과"라고 말한 다음, 에이젠슈테인은 그 대체 용어로 '엑스터시'를 소개한다. 엑스터시란 어원적으로 'exstasis'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신을 벗어나는 것(going out of himself)' 혹은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는 것(departing from his ordinart condition)'을 의미한다. 즉 파토스란 일종의 엑스터시로서 "다른 것으로의 전환,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의 전환,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되는 것으로의 전환"을 꼭 수반한다. ···(중략)··· 에이젠슈테인은 40년대 후반 다음과 같이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이른바 [충돌] 몽타주의 원리는 무엇보다도 파토스의 영화술이다." (176~177p) 파토스 구성은 근본적으로 정서적 내용의 강도가 계속 고조되는 양상을 보였다. 에이젠슈테인은 1945년부터 1947년 사이에 쓴 「사물의 구조에 관한 재고찰(Once again on the Structure of Things)」에서 이러한 파토스 구성을 '직접 과정(direct course)'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에이젠슈테인이 생각하는 파토스는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직접 과정'과 정반대되는 '역(逆)의 구성(reverse construction)'도 있다. 엑스터시 혹은 파토스의 상태는 보통 눈물이 쏟아지거나,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이 바로 '직접 과정'의 파토스 구성이다. 그러나 '역의 구성'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인다. 여기서는 흐르는 눈물이 갑자기 멈추고, 고함이 침묵으로 돌연히 변하고, 고양된 시적 대사가 일상적인 대화체로 바뀐다. 에이젠슈테인은 이것 역시 "자신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파토스의 일반 공식을 따른다고 하였다. (187p) 보드웰은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이론이 1930년까지는 '유물론(materialism)'의 영향 아래 충돌이나 대립을 강조하였으나, 그 이후 '관념연합론자 심리학(associationist psychology)'의 입장을 취해 조화와 통합에 집착한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커다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에이젠슈테인이 후기에 와서 조화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항상 '조화로운 대위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37p)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에이젠슈테인에 이르기까지 극적 구성은 두 가지 중요한 과정을 내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첫째는 표현할 극적 요소들의 선택이며, 둘째는 선택한 극적 요소들의 조립이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있어서 이론가들은 연결 몽타주와 충돌 몽타주로 대변되는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 왔다. 일반적으로 연결 몽타주가 삶의 순간들을 그럴듯하게 연결시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느낌(verisimilitude)'을 주려고 하였다면, 충돌 몽타주는 인간의 삶을 단편적인 조각으로 재구성해 새로운 리얼리티를 창조하려고 하였다. (2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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