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오세일

오세일

11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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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noons of Solitude (英題)

映画 ・ 2024

平均 3.8

개인적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경기장에 오르는 대가로 자신의 육신을 걸고 황소와의 대결을 자처하는 투우사 안드레스. 그의 모습은 마치 대자연의 위압감에 한낱 인간의 존재 따위는 더 이상 의미 없어지는 드넓은 바다에서, 홀로 목숨을 걸고 청새치를 잡는 노인을 연상케 한다. 일부러 스스로를 실존의 무대로 내세우며 끊임없이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는, 어쩌면 살아있다는 감각을 욕망하는 자들의 삶적 투쟁. 안드레스는 자신의 옷에 묻은 피의 양에 따라, 자신의 몸에 새겨진 상처의 개수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절감한다. 그가 위험해 처할수록 엔터테이너적인 가치는 오르고, 그가 황소의 뿔에 받쳐 죽음과 가장 가까워지는 찰나의 순간 그 가치는 정점에 달한다. 그의 실존을 향한 여정은 아이러니하다. 자신의 삶을 증명해 내는 방식이 어떤 생명의 죽음을 담보로 해야지만 비로소 작동되는 부조리의 구조이기에. 그의 가치를 위해 수많은 황소의 목숨이 희생된다. 안드레스가 죽음을 향해 다가갈수록 관객들은 열광하지만, 정작 최고의 만족을 이끌어내는 마지막 한 방은 황소의 도축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육신을 죽음과 최대한 가까이 맞닿게 하여 호응을 얻어내고, 황소의 목숨을 거두어 그 호응을 온전히 개인의 것으로 만든다. 안드레스가 광대라면, 황소는 광대의 손에 쥐어진 도구이다. 그 쓸모를 다하면 가차 없이 버려질 도구. 그런 비정함의 정서는 칼에 찔려 탈진한 황소의 뇌에 단검이 들어가는 순간, 온몸을 경련하는 와중에도 줄곧 검게 빛나는 황소의 눈빛 클로즈업에서 극에 달한다. 투우를 하는 안드레스의 표정과 몸짓은 마치 투우 그 자체에 매혹된 하나의 피사체를 보는 듯하다. 실존의 증명 이전에 일단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이 상황 자체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을 즐기는 그. 거대한 황소와 두 눈을 마주 보며 서 있는 짧은 몇 초 간의 찰나. 폭풍전야의 시간 동안 내면을 휘감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이토록 짜릿한 감각. 온몸의 피가 뇌로 쏠리며 각성을 요하고, 두 눈은 잠시 동안 깜빡이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그 순간에서만큼은 오로지 자신과 황소, 이 둘만이 지구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내 빨간 망토를 향해 돌진하는 황소. 돌진하는 황소를 성공적으로 속이고 농락할 때, 안드레스의 수명은 연장된다. 분명 자칫 잘못하면 황소의 뿔에 받쳐 목숨이 날아갈 위기에 매 순간 놓이지만, 모순되게도 그 과정은 동시에 그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개념으로도 기능된다. 인간의 본능에 스펙터클은 결코 떼놓을 수 없는 욕망의 이끌림일까.